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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Mar 18. 2020

[도장깨기] 거리를 두는 이유

나를 찾아서 : 심리적 거리 == 안전 거리 유지

((칩거 23일의 기록))


퇴근이라고 외치면 바로 퇴근이 되어버리는 마법의 재택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매일 밤 하나의 글을 쓰자고 다짐했는데, 벌써 귀찮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너무 일반화하는 거 같아서,

나의 경우는 원래 이렇다라고 정정하려고 하는데,

원래는 어디서 온 걸까?


원래 이래, 이게 얼마나 비겁한 변명인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는 물어보지 말라고 입을 막아버리는 말이 아닌가?

세상에 원래는 없다.

그냥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 내가 그렇게 선택했을 뿐.


어제의 글에서 내가 사람들과 일정한 정서적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사람인가?는.. 위의 얘기처럼 잘못된 표현이다.

그럼 나는 왜, 언제부터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살고 있을까? 

답 없는 고민-사실 제대로 생각하면 답이 나올 고민이긴 하지만-에 밤새 뒤척이며 잠들었다고 하고 싶은데, 요새 자꾸 초콜릿, 쿠키, 케이크 먹방 ASMR을 보며 잠든다. 이쯤되면 꿈에서 한 번은 초콜릿에 둘러쌓인 행복한 순간이 나와야하는데... 왜 한 번을 안 나타나는지


그래서 글을 쓰면서 즉흥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내려가며 그 이유를 찾아보자.


나는 사람과 거리를 둔다. 거리를 두는 이유는 뭘까?

거리를 둔다는 건, 그 사람과 일정 간격 이상 친해지지 않으려 한다는 걸까?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싫어하나?

아니, 나는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어쩌면 여기에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싫어해서, 그 사람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킨다.

그래서 거절, 싫은 소리도 최대한 단어를 둥글게 둥글데 돌려서 표현하고,

정말 정말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야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내 말 때문에 기분 나빠지는 상황을 무척 꺼린다.

나의 답은 대체로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완전 좋아요"

거절은 다이렉트로 하지 못하고, 늘 조건을 달거나 긴긴 변명을 덧붙인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것도, 늘 애매하게 얘기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만나요. 봄이 가기 전에 봐요.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방이 편한 시간에 봅시다하고 둘러치고 말을 끝맺는다.

이건 상대의 편의를 생각해서기도 하지만, 거절하는 게 불편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절대 내가 먼저 약속이나 시간을 잡지도 않는다.

내가 먼저 봅시다라고 말을 꺼냈을 때 상대가 거절할까봐. 

나는 거절당하는 게 너무 무섭다.

누군가 나를 거절할 때,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거절이 곧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며,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상한 논리적 비약을 거쳐, 나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우 섭섭해하고, 다시는 그 사람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못하게 된다. 또 거절당할까봐 무서운 것이다.


여기 답이 나왔다.

나는 거절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는 늘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고 싶다.

그래서 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행동한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면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나는 나의 근거 없이 판단한 생각을 일반화해서 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거절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걸 무서워하듯이, 상대방 역시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애초에 내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할 거 같으면 말을 돌려버린다. 이런 나와 대화하다 보면, 가끔 컨텍스트가 매우 날뛰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내가 만약 다른 주제를 꺼냈다면, 높은 확률로 그냥 정말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떠올라서 잊기 전에 빨리 말하려는 산만한 성격때문이지만, 가끔은 그냥 이 화제를 통해 내가 져야할 부담이 생길까봐이다.

내가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고, 그 사람이 이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매우 큰 부담이다.

그래서 조금 비겁하게 내 마음 편하고자 사람들과 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부탁을 들어줄 순 없지만, 내가 상대를 거절한 일로 상대가 나를 미워하지 않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부딪힘을 회피한다. 

핑퐁을 주고 받듯, 서로의 솔직한 감정을 꺼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한다.

그러다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와서 충돌할까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게 될까봐.

싸우다 멀어지는 게 두려워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있으려 한다. 


멀어지지 않으려 적당히 떨어져 있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이야기인가?



이런 마음은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안전거리를 만든다.



서로 간의 안전거리를 지키면, 나와 상대방은 충돌할 일도 없고 그래서 그 누구도 다칠 일이 없다.

감정을 주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상처받을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늘 거리를 두고 친해진다. 너무 좋아하지 않도록, 기대하는 바가 없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하게 친해진다.

안전거리 확보를 통해 얻는 안정이, 안전거리 미확보를 통해 얻는 마음의 상처보다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부딪힌 적이 없다.

다른 누구와 싸워본 적 없다는 말은, 그만큼 상대와 감정적으로 엮인 일이 없었단 얘기다.

싸움이 생길 거 같으면 자리를 피한다.



그런데 얼마전, 이런 카톡을 받았다.

이 카톡을 받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고 방식이었다.



싸워서 멀어지더라도, 언젠가 다시 가까워진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족이 아닌 이상, 누군가와 부딪히게 되면 그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싸움을 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교류하고 부딪힌다는 건

그 사람과 내가 지금 싸우더라도, 다시 화해하고 친해질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싫은 건 싫다고 이야기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행동을 기분 나빠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싸우면서 더 친해지고, 더 가까워지는 건데, 두렵다는 마음에 나는 이런 기회들을 밀어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지나치게 몸을 사려왔던 걸지도 모른다.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것들을 두려워하면서, 정작 두려워해야할 것들을 놓쳐왔다.

미움 받을까 걱정하고, 순간의 부딪힘을 두려워 회피해왔다.

그 결과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눈 앞에서 흘려보냈다.

내가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말해서 거절당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그 사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싫어서 그런 거라면 어쩌겠는가?

내가 직접적으로 거부당하지 않은 채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받아들인 건 아닌데, 

난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 애초에 가지지 못한 걸 잃을까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와 싸우던 부딪히던 나 자체를 거절하지 않을텐데, 부딪혀도 다시 다가오고, 다시 이야기를 하며 풀고, 그러면서 더욱 가까워졌을 텐데..



내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일 것이다.

그런 지레잠작으로 하는 걱정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만약 거절당한다면, 거절당하는 대로 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이 필요하다면 노력해야겠지만,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건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를 걱정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이렇게 쓴 소리를 용기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의 부딪힘이 부담스러운가?라고 나에게 되물어보았다.

오히려 그들의 부딪힘이 얼마나 용기를 내서 한 말일까?라고 생각해보면

이러한 부딪힘은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상냥한 부딪힘을 나는 왜 두려워했던 걸까?

이 부딪힘은 상대와 친해지고 싶다, 우리가 싸우게 되더라도 우리는 계속, 아니 지금보다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부딪혀 오는 것이다. 


상대가 용기를 내 다가오는 부딪힘을 피해서는 안 된다.

진심이 가득 담긴 부딤힘에는 나 역시 진심을 다해서 내 마음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면 더 솔직하고 용기를 내서 부딪혀야하는 것도

그래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어야 한다.

믿지 않았기에, 조금만 부딪히면 나와 멀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부딪혀 깨져버리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부서졌으면 다시 고치면 되는데, 그 가능성을 닫아뒀다.

상대방은 나를 믿고 부딪혀 온 건데, 나는 상대를 믿지 못하고 도망쳤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게 왜 어려웠을까? 뭐가 무서웠을까?

사실 잃을 건 하나도 없는데,

싸우고 부딪힌다고 잃게 되는 거라면 애초에 내가 온전히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가지지 못했던 것을 잃을까 두려워, 진짜로 가지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그만하고 싶다.


나에게 진심으로 부딪혀오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다.

그 사람들이 용기를 낸 만큼, 나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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