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만났을때
화학적 작용이란 게 있다. 케미스트리. 우리가 흔히 케미가 난다, 케미 돋는다 하는 그 케미...
화1, 화2를 개떡같이 싫어했던(못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 내가 한 말은 아니다.
칼융이 한 말이다. 융은 이런 말을 했다.
The meeting of two personalities is like the contact of two chemical substances.
If there is any reaction, both are transformed.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화학 물질의 접촉과도 같아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면 두 사람 다 변하게 된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전혀 다른 물이 만들어지듯이
어떤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은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
로댕과 클로델이 만나 지옥의 문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 처럼,
릴케와 살로메가 만나 시가 탄생하듯 그렇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태어나게 한다.
브랜드와 브랜드의 만남도 그렇다.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만남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방식이지만,
언제부턴가 전혀 이질적인 산업 분야의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 새로운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콜라보로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휠라(FILA)는 대표적인 화학적 반응,
브랜드 간의 케미스트리를 마케팅과 디자인 전방위적으로 제법 잘 활용하고 있는 브랜드이다.
메로나와 콜라보하고, 츄파츕스와 콜라보를 할 때도,
건담과 콜라보를 해서 내가 말도 안 되는 220 사이즈의 운동화를 눈물을 머금고 구매하게 만들 때에도,
피카츄로 도배된 컨버스를 출시할 때에도
그냥 재미있군 이런 생각 뿐이었다.
모두가 다 아는 브랜드, 모두가 다 아는 캐릭터, 모두가 다 아는 IP와의 콜라보는
유행처럼 번졌으니까 하는 거겠지 싶었다.
코로나 재택 여파로 옷 쇼핑을 하지 않은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어느덧 여름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출근했더니 모두 반팔인데 나만 긴팔을 입은 거 같아서..
사설이 너무 길지만
어쨌든 반팔 티셔츠를 쇼핑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너무 너무 너무 귀여운, 완전 나의 취향을 정조준해서 저격하는 티셔츠를 발견했다.
늘 그렇듯 이거 어때라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쓱 보고 가면서 시크하게
"누가 보면 거기 직원인 줄 알겠어"
다른 사람에게 캡쳐해서 보내줬더니
"거기서 일하다 나온 것처럼 보일 거 같은데..."
아니!! 이 사람들이...
그렇다.
그 전에는 휠라와 슈퍼막셰도 만났다..
서브웨이와 콜라보한 수준을 넘어선듯한 이 퀄리티는 무엇일까?
특히 초록색 티셔츠는 서브웨이 유니폼처럼 보인다.
자칫 입고나갔다간 모두가 위의 대사를 똑같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뒤에 있다.
장난스러운 체크박스는 휠라 공식홈페이지 속 영상에서 직접 체크 밑 엑스표시 등으로 DIY를 할 수도 있다.
이미 꽤 오래 전?에 출시된 티셔츠였는데, ((슈퍼막셰와는 4월, 서브웨이와는 5월에 콜라보를 진행함))
너무 먹고 사는데만 집중한 나머지 확찐자가 되어버려서
옷쇼핑은 나중에 살빼고 나서 해야지, 재택 풀리면 그때 사야지 하다보니 모르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바깥으로 나가야하는데.. 집에만 있었더니.. 이렇게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고 있다니...
서브웨이는 모두가 한 번쯤은 먹어본 그 서브웨이다.
초록색과 노란색의 만남.
푸릇푸릇한 야채들이 살아 숨쉬는 듯한 그런 아삭한 신선함이 느껴지는 브랜드 서브웨이.
뭔가 건강한 듯한데 패스트 푸드고, 야채를 잔뜩 주는 거 같고 그런데 저렴하고...
어울리지 않는듯한 아이덴티티들이 믹스매치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서브웨이와 휠라가 만났다.
((이미 샌드위치백과 귀여운 신발들은 모두 품절 상태다. 흑흑..))
서브웨이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메뉴 커스터마이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메뉴들을 조합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서브웨이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아이덴티티라고 생각된다.
내가 원하는 야채를 추가하고 빼고, 내가 원하는 소스를 조합할 수 있는 것..!
이번 휠라와의 콜라보에서도 서브웨이의 메뉴 커스터마이징을 키치한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메뉴명과 체크박스, 다양한 속재료가 들어간 샌드위치의 해체도, 운동화에 붙은 태그 등
티셔츠에서 디자인적으로 표현한 요소들은 모두 서브웨이하면 떠오르는 요소들이다.
서브웨이는 그간 휠라가 보여줬던 식품 브랜드와의 콜라보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펩시, 츄파츕스, 빙그레와 연달아 콜라보를 해왔던 휠라가 아닌가?
그런데 슈퍼막셰와의 만남은 조금 결이 다르다.
슈퍼막셰는 이태원에 있는 복합 식문화 공간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식료품 가게면서 카페면서 식당이기도 한 이 곳은 작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세를 탈 모든 요소를 갖추긴 했다.
화려한 색감과 신선한 디자인적 요소가 가득찬 공간, 사진을 찍어 올리기엔 최적화된 공간 브랜딩을 선보인 곳이다.
브랜딩 파워가 넘치지 않는, 이제 막 1년차 정도된? - 내가 안지 1년된 브랜드인걸지도..- 신생 브랜드와 콜라보를 한 것이다.
최근 이태원, 연남동, 망원동, 세로수길, 도산공원 틈바구니 속에서
개인 가게들이 하나의 브랜드처럼 자기만의 차별성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도에 달려있는데 이는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서 좌우된다.
무엇 하나는 확실하게 잘 해야 살아남는다.
어떤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바로 떠오르는 포인트가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이건 여기가 제일 잘하는 것 같다, 여기 것이 제일 좋다, 편하다, 예쁘다, 멋지다, 맛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즉, 사람들이 어떤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그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가 연상될 수 있어야 한다.
곧바로 떠오른 그 아이덴티티가 그 브랜드의 가치가 된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건 화제성이다.
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브랜드만의 특별함이 돋보여야 하는데,
틱톡에서 화제가 되던,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사람들의 눈과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한다.
이건 브랜드 뿐 아니라 사람 또한 그렇다.
사람 역시 크게 보면 하나의 브랜드화 되어가고 있다.
어떤 누군가의 이름 석자를 떠올렸을 때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와 바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다 회사 일도 생각한다.
((일단 내가 우선이다.. 내가 잘 되야 회사도 잘 되고...는 아니지만.. 내가 잘 안 되도 회사는 잘 되겠지만... 사실 회사가 잘 안 되면 나도 잘 안 된다.. 아닌가.. 어쨌든 회사는 내가 잘 안 되도 알아서 잘 될 거 같고... 나는 회사가 잘된다고 덩달아 잘되는 게 아니니까.. 내 걱정부터 먼저한다..))
우리 회사는 앞으로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 일이 회사의 아이덴티티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회사에 아무런 가치를 못 주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눈물..))
누군가가 우리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
우리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통해 신선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
그 이면에는 그 브랜드에서 힙한 무언가, 그 브랜드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색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브랜드도 그렇고, 사람도 똑같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듯
누군가에게 원하는 브랜드가 되고, 누군가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그 사람, 그 브랜드 만의 특색이 있어야 한다.
그게 매력이 되고 자본이 되고, 힘이 된다.
나는 나를 어떻게 브랜딩할 것인가?
나를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한다.
그리고 나와 만나는 사람들, 가족, 친구, 회사 동료들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나와 영향을 주고 받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는 조금씩 변한다.
그 변화는 좋은 쪽일 수도 있고, 나쁜 쪽일 수도 있고 일시적일 수도 있고, 영구적일 수도 있다.
이왕이면 좋은 쪽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조금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곧 주말인데, 이번 주말에는 맛있는 홈카페, 홈스토랑 놀이를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
+
사회적 거리를 두는 기간이다.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하는 만큼, 사람과 사람 간에도 물리적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만나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고 응원할 수 있다.
코로나 블루스라고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무기력증, 우울증이 감기처럼 번지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좀 더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신경을 써보자.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먼저 연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만큼 마음의 거리는 좀 더 성큼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다가가서 안녕하고 인사하는 것 보다, 간단한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 게 더 쉬울 것 같은데,
물론 이건 온전히 내 생각이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건..
브런치 통계가 늘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이 글을 본 사람들이 있다면
제가 먼저 안부 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잘 지내고 있으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겨울을 지나 어느덧 여름이 코 앞으로 다가왔네요.
여름철 과일들이 하나둘씩 반갑게 나오고 있더라구요.
체리가 참 신선하고, 살구도 새로 나오고, 자두와 복숭아도 어느새 나왔어요.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만나서 좋아하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소소하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지금이지만, 이것 또한 언젠가 지나가리라고 생각해봅니다.
모두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길 바래요!
또 만나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