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늘 제멋대로다. 분명 내 안에 있는데 내 것 같지 않다.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보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어할 땐 위로를 건네보기도 하지만, 마음은 늘 제멋대로다.
말 안 듣는 자식 녀석이란 게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마음이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특히 누군가에 대한, 무언가에 대한 마음은 통제불능이다.
나의 마음은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어느 하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한계를 잘 알지 못한다. 늘 보고 싶어 하고, 함께하고 싶고, 또 연결되어 있고 싶어 한다.
나와 상대의 '마음'이, 나와 상대의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건 행복이자 축복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감사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참 많고 많은 생각들이 근심의 모양으로 스쳐간다.
나와 상대의 마음이 다를 땐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나와 상대의 여건이 다를 땐 마음이 너무 커지진 않을까, 노심초사 경계하게 된다.
몸과 마음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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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몸 사이에 거리가 있듯,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두 거리는 어느 정도 닮아 있어야 서로 아프거나 힘들지 않다.
몸의 거리가 먼 데, 마음이 가까우면 깊이 연결될 수 없음에 아프다. 몸의 거리는 가까운데, 마음의 거리가 멀면 어찌할 수 없음에 힘이 든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들은 꼭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걸 아마 인생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럴 땐 몸이든 마음이든 움직여 보는 것이 현명하다. 가만히 지내며 상황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건 어린 생각이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문제에 '여건'이라는 변수가 더해지면 문제가 꽤 쉽지 않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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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거리는 무척 가까웠지만 여건이 어려웠던 어느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을 둘러싼 여건은 꽤나 강력한 것이어서 당장의 남자와 여자가 해결하기엔 한참 역부족이었다. 여건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무척 괴로워했다.
어느 날, 남자는 몸의 거리를 크게 떨어뜨려 볼 결심을 했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한 마음의 거리만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몸의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법이라 했으니까. 어쩌면, 마음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져 다신 여건을 넘어설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여건의 존재는 여전히 굳건했고 몸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쉽게 멀어지지 않았다. 그들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아직도 서로에게 필요한 선택지가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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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있어서는 진심을 다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이 가는 길을 따르는 것이라 배웠다.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경험한 숱한 두려움들이 나를 옥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축적된 이것들은 발목을 단단히 붙잡는다.
내가 결정한 순간의 선택이 나와 관계된, 나와 관계되지 않은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다. 부정은 같은 양의 긍정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장기적으로는 어떤 선택이 옳은지, 유리한지에 대해선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해야 할 일은 꽤 분명히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미뤄왔던 중요한 일을 곧 하려 한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곧 봄이 찾아온다고 한다.
다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