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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Jan 06. 2023

[생각] 잘 쓴 글이 대체 뭐길래?

이곳 브런치에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 잘 쓰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자신하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나 또한 이곳에 글을 남기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한 번쯤은 '잘 쓴 글이란 정말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글을 잘 쓴다는 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다?

어휘력이 풍부하다?

전하려는 바가 논리 정연하다?


왠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준은 지나치게 문장, 어휘, 구성과 같은 외양에 주안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글이 무엇을 어떻게 담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가 보자.


여기서는 어느 정도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꼭 유려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글쓴이의 진심이나 목소리가 느껴지는 글을 보며, 꽤 잘 쓴 글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문장은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문장론을 잘 준수한 글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나 감동 혹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글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가 실제로 많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글을 잘 쓴다는 건, '어떤 언어에 능숙하다'라는 말과도 견주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군가를 보고 '영어를 잘한다'라고 평가할 때, 처음에는 그 사람의 발음이나 억양, 어휘력, 전달력 등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고 판단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정말 영어를 잘한다'고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어느 한 언어를 정말 잘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로 얼마나 폭넓은, 얼마나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지도 눈여겨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 대화’만 할 줄 아는 사람보다는 ‘비즈니스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비즈니스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학술적인 혹은 전문영역의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해당 언어에 더 능숙하고 잘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앞서 이야기한 '잘 쓴 글'과 마찬가지로 '좋은 언어 실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에는, 겉으로 드러난 가치뿐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도 중요한 것이다.

'잘 쓴 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시각도 있다.


내가 아는 인물 중에는 삼성전자의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다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사람이 있다.


젊은 대표의 비전에 꽂혀 같이 한번 미친 듯이 달려보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나와 처음 만난 사석에서, 같이 소주를 몇 잔 기울이다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삼성전자에서 글을 잘 쓰는 직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OO에서도 여전히 글을 잘 씁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얼핏 보기에는 뭔가 허영심 가득해 보이고, 시각에 따라서는 재수 없어 보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저 높은 자신감은 잠시 차치해두고 말이다.


앞선 이야기에서는 글의 가치는 '담고 있는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한가?'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필요한 글쓰기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글쓰기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서 글쓰기로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는 정말 많은 고심과 노력이 필요하고, 변화와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에서 필요한 글쓰기라는 큰 영역 내에서는 일정한 유사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분야를 달리하더라도 여전히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에게 또 하나의 정말 멋진 무기가 생긴 셈이다.

어느 정도의 문장력이 갖추어져 있고, 여러 분야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조금은 손쉬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인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변만 보더라도, 한 소설가에게 프로젝트의 제안서를 부탁하는 경우를 곧잘 접하게 된다. 글을 부탁하는 입장에서야,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금방 써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 소설가의 얼굴은 무척 당혹스럽다.


상대는 '너 글 잘 쓰잖아, 왜 그렇게 생색을 내?' 하는 듯이 당연하게 손 내밀고, 소설가는 '이 글과 저 글의 다름'을 열심히 설명하지만 그 말이 오롯이 전달되는 것 같진 않다.


나는 약간 거리를 두고, 양쪽의 면면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 시간은 정말이지 무척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턱대고 글을 잘 쓴다고 말하기보다, '어떤 글을 잘 쓴다', '어떤 글에 익숙하다' 등으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곧잘 들여다볼 수 있고, 어느 날 누군가가 갑자기 찾아와 제안서를 내미는 오해도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위 포스트는 오피니언타임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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