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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Sep 14. 2020

[생각] 완벽주의에 대한 단상

진정한 의미의 완벽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이라는 건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추상에 불과하다. 인생 어디에도 완벽은 없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완벽을 꿈꾼다. 태생적인 불완전함을 거부한 채 이상적 가치에 도전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들을 완벽주의자라 부른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길 택한 자들이다. 하지만 이들 또한 생의 어느 한순간에는 타협해야 한다.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를 펼쳐 나가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행태이기 때문이다. 태생적 한계란 그런 의미다. 뭐,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완벽한 메뚜기라든지, 완벽한 돌멩이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완벽한 핫도그라든지. 


살다 보면 "나는 완벽주의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이들을 만나면 먼저 경계한다. 100퍼센트를 선망하는 그들의 기질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을 '나는 겁이 좀 많아.' 쯤으로 알아듣는다. 그러면 대체로 틀리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부류이기에 잘 알고 있다. 완벽주의자와 겁쟁이는 실은 무척 닮아 있다는 걸, 특히 실패의 두려움에 한해서 그들은 거의 쌍둥이와 다름없다. 

내게는 꽤 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해온 친구가 하나 있다. 이제 13년 차니까, 고등학교 1학년 즈음에 시작했을 것이다. 대단한 블로그는 전혀 아니다. 딱히 오가는 방문객들에 신경 쓰지 않고, 긴 기간에 비해서는 지금도 규모가 작은 페이지다. 정보의 바다에서 홀연히 떨어진 조그만 섬 같은 곳이다. 시류에는 개의치 않고 그저 한구석에 존재하는. 당시에는 블로그에 별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친구가 한다는 말에 덩달아 하나를 따라 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첫 블로그는 네이버였다. 그때의 나는 정말 열성적인 블로거였다. 학업을 제쳐두고 몇 날 며칠 블로그 스킨을 만들고 일일 방문수에 희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얼마 안 가 먼저 시작했던 친구와도 방문수가 엇비슷해졌다. 나는 불어난 이웃들과 소통하는 게 좋았고, 작게나마 무언가 키워나가는 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잘 나가던 블로그는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었다. 스스로 흥미가 떨어진 탓이었다. 그간 써놓은 글들을 돌아보니 괜히 낯간지러웠다. 보기 싫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폐쇄해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친구의 블로그에는 한 번씩 방문했다. 이제는 특정한 주제도 없이 그냥저냥 한 글들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때에도 일일 방문수는 겨우 두 자리에 불과했다. 친구의 오타쿠적 성향에 존경을 표했다. 그러다 나도 다시 해볼까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해도 이것보다는 잘할 수 있으리라는 약간의 우월의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블로그를 개설했다. 이번에는 친구와 같은 플랫폼인 이글루스였다. 자유로운 페이지 폼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몇 달 안 가 그만두어버렸다. 네이버만큼 유저가 많지 않은 탓이었다. 키워가는 재미도 없었다. 나는 블로그에서 아무런 보람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또 폐쇄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렀다.


다른 SNS는 하지 않는 친구의 근황을 알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그 블로그를 찾아야 했다. 한두 자리를 오가는 일일 방문수는 여전했다. 나는 친구가 왜 블로그를 계속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써봐야 고작 몇 명 봐주는 포스트들, 댓글이라고는 내가 쓴 것이 전부인 블로그였다. 나였다면 그 기간 동안 몇 배는 키워서 광고 수익도 내고 가치를 인정받았을 텐데. 나는 친구의 어리석음을 내심 비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았던 건 나였지만. 

당시 군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일상에서는 해소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출할 배출구가 필요했다.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취미와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또다시 무턱대고 블로그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방문자수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만한 형편이 못 되기도 했지만, 어차피 볼 사람만 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플랫폼은 티스토리로 정했다. 초대장을 받아야만 개설할 수 있다는 폐쇄적인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 


이 블로그는 그래도 일 년은 넘게 했던 것 같다. 게시물의 수준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포스트 하나하나에 꼬박 하루씩 썼다. 하지만 군 생활이 안정에 접어들자 블로그를 찾는 내 손길도 점차 뜸해졌다. 의무감에 겨우 써놓은 게시글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옥죄었다. 가치 없는 글들의 나열이 무슨 의미가 있나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의 이상적인 블로그 상은 뚜렷했다. 나는 스스로 완벽이라고 그어놓은 선에 집착했다.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다 끝내는 그 블로그도 폐쇄했다. 그리고 내 생에 블로그는 다시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또 포스트를 쓰고 있는 건, 내 안에서 완벽에 대한 생각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타협이라 불러도 좋다. 지금도 게시물 퀄리티에 대한 부담은 가지고 있지만, 전처럼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어느 날 돌연히 블로그를 닫아버릴 정도로는 말이다. 이 생각이 제대로 틀려먹었다는 걸, 최근에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의 블로그를 오랜만에 다시 방문하며 느낀 점이다.

단골손님이라고는 나뿐인 그 블로그에는 지난 13년의 기록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글들의 집합이었지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의미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간 친구와 주고받았던 수십 개의 댓글들을 하나씩 모두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우리의 역사가 있었다. 힘겨웠던 고등학교 시절의 고충이 있었고, 대학교 신입생 때의 설렘,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군 생활, 학점 따위에 얽매여 있던 대학생활,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단기간에 무언가를 성취하고 결과를 내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이 같은 경험이 자존감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인생은 끝없는 실패의 기록이라 했다. 달콤한 성공의 순간은 문장 끝에 매달린 마침표처럼 어쩌다 한 번씩 찍힐 뿐이다. 문장의 완성은 마침표로 맺는다지만, 그 온점 하나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마침표 하나 빼먹었다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이도 없다. 그것이 비문이라고 거듭 주장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문장마다 마침표를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점 하나에 우리를 집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장 끝 점 하나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점 하나 없더라도 맥락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것은 단지 점을 제대로 찍지 못할까 봐 애초에 기록하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특히 본인이 완벽주의자라고 믿는 이에게는 더욱 해당된다. 스스로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으로 미리 괴로워하는 것은, 자신의 역사를 끊임없이 써 내려가는 일, 즉 인생을 살아가는 일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쓴다' 는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말을 나는 좋아한다. 이 말이 단지 소설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개개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뭐가 됐든 꾸준히 쓰다 보면 가끔은 괜찮은 이야기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뜻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힘, 그것을 용기라 부를 수 있다면, 용기 있는 자야 말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진정한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완벽주의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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