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생존을 위해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일상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밥을 먹고, 밥을 벌고, 다음 밥벌이를 위해 쉬는 일. 심히 간추린 것 같지만 실상이다. 꿈 없인 생존할 수 있지만 밥 없인 살아갈 수 없다. 생명체로서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인간이 무슨 짐승 새끼냐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손과 두 발으로 나란히 땅을 짚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별 탈 없이, 단순한 일상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어떨까. 정말 꿈만 같이 행복한 이야기일까. 생을 다할 때까지 밥 걱정만큼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아마 나날이 밥걱정을 해야 하는 지구 상의 수많은 생물체들이 두 손 두 발 두 이파리 모두 들고 반길 것이다. 단 하나의 종은 제외하고 말이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참 특이하다. 어느 생물보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안정적인 삶을 잘 구축해내지만, 단지 지루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걸 한순간에 내던지기도 한다. 먹고 자고 싸고,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여느 생명체들이 아무렇지 않아 하는 반복적인 행태를 죽도록 견디지 못해 한다.
특히 권태 같은 것이 어느 날 문득 일상에 찾아오는 순간에는 생의 의미마저 잃어버린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일상을 위협한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 자신을 올려 두고 지켜보기를 즐긴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그 아슬함 속에서 겨우 일상의 가치를 배운다. 이를 두고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야 하는 걸지.
하지만 굳이 터전을 박차고 여정을 떠나거나,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아도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은 무턱대고 우리를 찾아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 딱히 이르는 말은 없다. 우리는 그저 일상이 아니라는 의미로 '비일상'이라 부른다.
이 비일상이라는 존재는 참 흥미롭다. 대체로 비일상은 일상을 한층 윤택하게 한다. 인간은 비일상을 통해 비로소 일상을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비일상이 '너, 그러다 그 소중한 일상 잃는다?' 하면 그제야 '아 맞다, 내 소중한 일상' 하는 것이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셈이다. 그러나 어떠한 비일상은 그 경계를 허물고 일상 속으로 잠식한다. 그러고는 서서히 세력을 넓히며 우리의 분별력을 흐린다. 비일상이 더 이상 한낱 비일상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다.
몇 년 전부터 YOLO의 바람이 불면서,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때려치웠다든지, 내친김에 다 정리하고 해외로 왔다는 식의 탈(脫) 일상 경험담들이 부쩍 인기를 얻고 있다. 그걸 보며 나도 정말 전부 다 던져버리고 떠날까 하며 고민하는 사람들도 점차 느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을 보며 이 시대에는 돈키호테가 너무 많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도 저렇게도 멋있게 살아보는 거지,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창을 꼬나 쥐고 말을 타고나서는 모험담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누구나 모두 돈키호테가 될 필요는 없다. 돈키호테는 결국 비극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겠지만, 분명하게 일러두고 싶은 건, 그럼에도 지금껏 꾸려온 자신의 일상은 소중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나는 이 지루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살아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삶이 과거의 삶보다 월등히 재미가 없어졌는지, 단지 더 큰 자극에 익숙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턱대고 누구나 현재의 안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그들의 미래 안락은 누가 책임져주어야 하는 것일까.
YOLO라는 말이 처음 유행할 때부터 짐짓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그건 근시안적 낙관주의에 지나지 않아,라고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던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렇게 근사하게 겉멋만 잔뜩 든 용어는 그때 처음 들었다. 아마 세상에서 그 친구만 쓰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나도 가끔씩 쓰게 됐지만, 어찌 됐든 그 이후로 나는 근시안적 낙관주의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비일상이 일상이 되고, 그런 일상을 지속되다 되돌아왔을 때, 과연 내게 남아있는 건 무엇이고 나의 일상은 어떤 모양일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봄직하다.
※ 위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