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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Sep 03. 2021

[생각] 스트레스는 더 큰 스트레스로?

이야기 클리셰로서의 '강간'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스트레스 상황에 부딪힌다.


일상적 스트레스는 주로 가족과의 불화, 직장 내 갈등, 연인 혹은 친구와의 다툼 등 관계에서 비롯되거나 입시, 취직, 다이어트 실패 등 나 자신의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발생한다.


현재 자기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위에 나열된 정도에 국한된다면, 그나마 스스로를 운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라 여겨도 좋을듯하다.


이 정도는 누구나 겪고 있으며 언제든지 해소될 수 있는 종류의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극화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불화라 해서 다 같은 불화가 아니고 갈등이라 해서 다 같은 갈등이 아니다. 작은 불화나 갈등에서 시작된 처참한 비극들을 우리는 매일 아침 뉴스에서 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잠시 접어두고, 어느 정도 일반적인 사례만을 살펴본다면 아래의 연구결과는 유의미하다.


2017년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의 토마스 홈즈 박사팀이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 상황'에 점수를 매겨 순위로 정리한 표다. 배우자의 죽음을 100점으로 놓고 나머지 상황에 상대적으로 배점을 한 듯하다.


나라별 문화의 차이는 있겠지만 배우자(혹은 연인)와 연관된 항목이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가까운 관계 중에서도 부모나 자식보다, 사랑하는 배우자(혹은 연인)에게 일어난 슬픔이 더 크게 와닿는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배우자(혹은 연인)를 잃는 비극 상황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픽션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빈번히 사용되어 왔다.


너무나 큰 아픔인 탓에 누구나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랑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도 커다란 슬픔을 느낀다.  


또한 지극히 이야기적 요소로만 본다면, 부부(혹은 연인) 관계는 굳이 한쪽을 떼어놓거나 죽이지 않아도 보는 이를 미치게 만들 수 있다. 이 특수한 관계는 우리가 생명만큼이나 신성시하는 성적 결합으로도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간'이라는 처참한 상황만 하나 더하면,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는 밋밋한 이야기에 자극적이고 비극적인 요소를 손쉽게 입히는 클리셰처럼 쓰이기도 한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몇 작품은 된다. 이를 주 소재로 사용한 경우도 있고, 보조 소재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어느 쪽이든 효과는 강력해 보인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中

주 소재로 쓴 작품으로는 톰 포드 감독의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를 들 수 있을 듯하다. 이야기 초반부터 등장하는 한 장면은 영화를 본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충격으로 남아 있다.


빨간 소파 위에서 벌거벗겨진 채 강간 살해된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한 가장의 모습. 나는 그가 등장하는 순간 더 이상 영화를 이어볼 수 없었다. 일시정지를 해놓고 한동안 멍하게 벽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보조 소재로 활용한 경우에는 무자비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전자와 달리, 캐릭터에 입체적인 요소를 더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는 사람들이 모두 실명한 재난 상황에서 부족한 자원을 얻기 위해 아내를 깡패집단에게 보내야 하는 남편들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아내를 보내야 하는 남편들의 심정과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마저 포기해야 하는 아내들의 내적 갈등이 드러난다.


뒤이어 벌어지는 눈물을 머금은 집단 난교의 묘사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때도 나는 역시 책장을 잠시 덮어두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 읽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다행히도 위의 두 작품과 달리 이에 관한 세밀한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은 '여진'이 적장의 몸 시중을 들다 살해되어 돌아온 모습을 보며, 부하들 앞에서 애써 담담하게 "내다 버려라"라고 말하는 이순신 장군의 심경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나약한 나라에 대한, 무력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은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이와 같은 극화된 상황들은 우리에게 여러 고민거리를 던진다.


정말 영화 같은, 소설 같은 이야기여서 100% 와닿지는 않지만 이런 일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상의 많은 스트레스들이 엄살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살면서 실제로 경험할 가능성이 희박한 범죄 이야기나, 공포영화를 스스로 찾아보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쯤은 사실 별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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