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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Apr 04. 2022

[칼럼] 친숙한 종이책, 앞으론 어떻게 될까?

지면매체의 고유성과 발전방향

작년 이맘때 즈음에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승리호>에는 언뜻 보기에 어색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2092년의 우주선 안에서 김용의 무협소설 『영웅문』을 종이책으로 읽는 장선장(김태리)의 모습이다.


무협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영웅문』을 읽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머나먼 미래에 우리가 과연 종이책을 읽을지는 의문스럽다. 이미 종이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 않으면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충분히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난관에 부딪힌 지면매체

올 초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월간지의 사업 신청을 하면서 시 관계자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제 월간지도 지면매체에서 벗어나 웹진 등의 전자매체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아울러 시 관계자는 “예산을 쥐고 있는 시의회에서 지면매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년째 동결 중이던 예산을 삭감하면서 전한 말이었기에 새겨듣지 않을 수 없었다. 지자체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이 월간지를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시의 권고에 따라 웹진 형태로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매체가 생소한 다수의 독자들과 지면의 편집 디자인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쉬이 내릴 만한 결정은 아니었다. 웹페이지를 구축하고 지면 내용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도 적지 않은 비용을 들 터였다.


일단 가능한 선에서 지면의 내용을 발췌하여,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하고는 있다. 하지만 당초 지면에 맞게끔 디자인된 내용을 웹상에 올리다 보니 가독성과 미관 측면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지속하는 것은 형식치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뭔가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자매체의 발달에 따라 다수의 지면매체들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지면매체는 현재 어느 지점에 와 있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설 곳을 잃어가는 지면매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6.1권으로 나타났다.


약 2달에 1권꼴로 읽는 셈이다. 연간 종이책 독서량이 70권을 웃도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종이책을 읽지 않는 이유 가운데, ‘종이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29.1%)이 가장 높은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우리는 단지 종이책을 읽지 않을 뿐 그 밖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하며 정보를 얻고 있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만 하더라도 대중교통 안에서 탑승객 전원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퇴근 후에도 아마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할애할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 인터넷 뉴스, 블로그 포스트 등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습득하면서 말이다. 이와 같이 단순히 정보를 얻는 방식이 지면매체에서 전자매체로 옮겨온 것이라면, ‘종이책을 읽지 않는 현상을 문제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흑묘백묘론

1970년대 중국의 주석 덩샤오핑(鄧小平)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을 부강하게 하면 그게 제일이다”라며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주장했다. 인민을 잘살게 하겠다는 대원칙 아래 그 방법을 두고 다투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언택트(Untact) 시대가 도래하고 비대면 환경이 조성되면서, 지면매체와 전자매체 사이에도 ‘검은고양이냐, 흰고양이냐’의 논쟁이 뜨겁게 대립하고 있다.


지면매체를 선호하는 측에서는 “전자책은 종이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고, 전자매체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으로 정보를 얻을지를 놓고 양측이 굳이 대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종이책이 편한 사람은 이전처럼 지면매체를 사용하면 되고, 전자책이 편한 사람은 신예의 전자매체를 이용하면 된다.


지면매체는 가독성이 좋고 필기가 용이하지만 공간과 무게를 차지하고 접근성이 떨어진다. 반면 전자매체는 원하는 책을 어디서든 읽을 수 있지만, 종이의 질감과 디자인 요소를 느끼기 힘들다.


양자의 장단점은 분명한 편이므로, 검은고양이는 검은고양이대로 흰고양이는 흰고양이대로 소임을 다하면 될 터다. 개인적으로는 매달 책자를 발행하는 입장에서 지면매체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지면매체가 마주한 현실

지면매체의 사양화를 최일선에서 체감하고 있는 곳이 언론사와 출판사일 것이다. 종이신문 구독자가 줄어든 언론사는 광고수입이 감소하고, 출판사는 서점 매출이 줄어들어 골치를 앓고 있다.


각각 인터넷뉴스와 전자책(E-Book)을 앞세워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대부분의 수익을 지면매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지면매체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동안 지면매체가 왜 각광받아 왔는지’를 돌아볼 필요 있다.


첫째, 지면매체는 발행 이후에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성(不可逆性)을 띤다. 지면의 내용이 옳든 그르듯 일단 인쇄되고 나면 수정이 불가하다. 언제든 수정이 용이한 전자매체와의 가장 큰 차이다.


정보가 수시로 변화하는 현대에는 다소 부적합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가역성은 양날의 검이다. 그릇된 정보를 게재했을 때는 크나큰 오점으로 남겠지만, 양질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게재했을 때는 그에 준하는 독자와의 신뢰관계가 생긴다.


해당 지면에서 발행되는 정보에 한해서는 독자들이 믿고 봐주는 것이다. 요즘처럼 불확실한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에는 이 점이 충분한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지면매체는 전자매체보다 집중력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전자매체는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문장의 길이가 짧아 독서의 몰입을 방해한다.


문장 전체를 읽지 않고, 처음 한두 줄을 읽은 다음 단락을 뛰어넘기 쉽다. 이와 같은 선택적 읽기는 여러 글을 훑어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긴 글을 정독하는 데는 집중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전자매체에 익숙한 학생들이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하고, 우리가 여전히 주의가 필요한 내용을 인쇄물로 출력하여 읽는 이유다. *


셋째, 우리는 아직 지면매체에 친숙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전자매체를 활용한 콘텐츠가 대중화된 지는 약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의 우리는 손가락을 화면에 스윕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책장을 집어 좌측으로 넘겨 왔다.


내용을 읽다가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밑줄을 긋고, 마음에 드는 페이지는 오려서 스크랩하거나 냉장고 문에 붙여 놓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화면’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전자매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자매체의 발달이 우리의 생활 습관마저 변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모양이 달라질 뿐

현재까지는 지면매체의 앞날이 마냥 어둡지 않은 듯하다. 지면매체가 가진 고유성을 앞세워 어떻게든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고 시장성을 가진 또 다른 매체가 등장한다면, 지면매체 또한 종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탈바꿈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종이책이 한때 지구 상에서 존재했던 잔재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그 형태가 달라질 뿐 콘텐츠가 담고 있는 가치는 유효하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갈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변함없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매체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향유하고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매체로의 전환이 가슴 아프지만, 그럼에도 인위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는 것은 지속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한다. 이러한 나의 예측이 잘못되어, 2092년에도 우주선 안에서 종이책을 읽는 날이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영화 <승리호>(2021) 중 한 장면
* 미국의 저명한 뇌과학자 제레드 쿠니 호바스(Jared Cooney Horvath)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에서 “당신이 읽고 있는 문장들에 관한 정보는 항상된 물리적 위치가 없으면 추후 회상을 위한 안내 단서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전자책들이 스크롤 바를 삭제하는 대신, 사용자가 디지털 페이지를 종이책처럼 손가락으로 넘길 수 있게 구현하지만, 여전히 종이 출력물에서만 존재하는 중요한 3차원의 깊이는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라고 주장한다.


※ 위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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