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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24. 2023

욕망을 꿈꾸며

이미 맞춰진 궤짝은 나의 것이 아니다

 욕망은 인간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자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역할을 부여받으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필요하다면 다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욕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 부처는 속세의 욕망을 버리고자 하는 욕망을 추구했다. 예수는 내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을 추구했다. 욕망의 형태, 크기와 에너지에 따라 그것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겠지만, 욕망 자체는 삶의 목적이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동생에게 양보를 곧잘 하며 온화한 성품의 아이는 어른들에게 칭찬받는다. 어른스럽고 믿을 수 있는 아이. 

 그러나 수정란이 되기 전, 태어날 운명인 아이가 이미 득도를 아니라면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본인의 욕망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져 버린 예민한 아이이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며 본인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데에 능하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은 것은 중요치 않다. 일의 경중은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판단되고 스스로의 주관적인 가치 판단은 터부시된다.      

 

 우리집은 내가 기억하지 못할 때부터 가난했다. 사는 곳은 산꼭대기에, 오래된 스트레이트 지붕에 기역자로 놓인 방과 부엌.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동네 언니오빠 친구들과 고등학교 운동장을 놀이터 삼아 날이 저물 때까지 놀았다. 부모님은 항상 일하시느라 바빴고,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놀면 됐다. 다만 어른들이 성가시지 않게 말썽 없이 아픈 것 없이 조용히.      

 부모님과 가끔 지난 일들을 얘기하다 보면 매번 하는 말씀이 있다. 

 

 너는 어렸을 때 한 번도 울질 않았어, 넘어져서 다쳤는데도 울지도 않더라. 성가시게 하지도 않고....... 그때 그거 사줄 돈이 없어서....... 한 번도 뭘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었어

 

 나는 유독 어른스러웠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가지고자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원하지 않는 척, 원한 적이 없었던 듯 무신경하게 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것도 흥 저것도 흥, 그렇게 의욕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남들이 YES 할 때 NO를 외치는 용기. 그것은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용기다. 다지선다형(多枝選多型) 선택지 위에 호불호를 분별할 줄 아는 눈은 누군가에게는 쉽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호락호락하여 쉽게 휩쓸리고 너그러이 넘어갈 줄 아는 나는 ‘아니’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도 버거웠다. 간절한 눈빛이나 강경한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의지는 나의 욕구를 하찮게 만들었다. 나의 의지는 분출된 적이 없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헛것과 같았다. 설사 존재하더라도 미미하고 미개한 것.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의견을 같이 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절망을 준 것은 아니다. 감춰진 마음을 돌본 적이 없으니 이 선택 또한 나에게는 족했다. 나는 편안하고 친근한 타인이 되었다. 

 

 사실은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플루트가 멋져 보였고, 그 침대가 편해 보였고,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허름해져 갔다. 선택할 수 없었던 가난을 마냥 창피해하지는 않았지만, 가난은 빛나던 환희를 바래게 만들었다. 썩어 문드러져 역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옭아매는 것들이 어느새 나 그 자체가 되었다.      

 

 처음부터 떼를 쓰고 울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소리를 칠 수 있는 아이였어야만 했다. 속에서 피어오르는 욕망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시기를 거쳐야만 했다. 그 시절을 겪지 못한 벌로 나는 나를 다시 받아들이는 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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