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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27. 2023

곁눈질

빵점 감정학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과 관계에서 일반적인 사람보다 에너지를 많이 쓴다. 그들은 상대방의 행동, 눈빛, 말투에서 찰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감정 상태를 예측한다. 남들은 느끼지도 않을 무형의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만남 자체로 에너지가 소모되고 과거에 했던 행동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후회와 걱정을 하느라 더욱 기가 빨린다. 그럼에도 예민하지 않은 척도 해야 한다면, 틀림없이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지쳐 바로 쓰러진다. 

 지금이야 예민한 사람들의 장점,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 등등 온갖 말로 예민한 사람들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 나오며 소수자들의 반향이 일어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민함은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며 소심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예외는 없었다.       

 

 “앞으로 쟤랑 얘기하지 마!”

 10살이 채 되지도 않은 아이들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줄 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무리를 제압하며 암묵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대범함이 있기도 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 역할을 하던 그 친구는 종종 무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녀의 집은 번화한 시장 옆에 위치했고, 그녀의 방에는 당시 보기 힘든 물침대가 있었다. 그녀는 물침대를 우리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너무도 성공적인 계획이었다. 그냥 침대도 아니고 물침대라니. 그때까지 침대에 앉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심히 앉으려다가 침대가 터지지 않을까 너무 걱정이 되었다. 결국 그 비싼 걸 망가뜨리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앉아보지도 못하고 노는 내내 그 근처만 맴돌았다. 

 

 늘 당당했던 그녀는 한 번도 거절당한 적 없는 아이처럼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가 없었다. 좋은 것뿐만 아니라 기분 나쁜 것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아직은 그저 신나게 노는 게 다였던 우리들은 그녀의 앙칼진 말에 순식간에 둘로 나뉘는 무리가 되었다. 표적이 된 친구가 신체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무리에서 내쫓기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가 그 친구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었다. 친구는 무리에 끼지도 빠진 것도 아닌 채 대장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 어린아이들이었으니 금방 화가 풀리고 금세 같이 놀았다. 

 대장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친구는 수시로 바뀌었고 그때마다 소외되는 친구도 바뀌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반복될수록 나는 괴로움에 사로잡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리고 배제된 친구 옆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틱틱거리는 말투, 흔들리는 눈빛, 귀찮은 듯한 행동들은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쉽사리 내게 들킨다. 그게 뭔 대수냐, 상대는 상대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만이라고 사람들은 조언한다. 말처럼 되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런 마음은 타인에게 듣기 전에 본인 스스로도 이미 수없이 되뇌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보이는 미묘한 감정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가둔 이들은 상대와의 감정 분리가 쉽지 않다. 애써 그들의 신호를 무시하는 척 하지만 실상 그 누구보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관계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무슨 반응을 보이는 게 맞는 것인지 계산하고, 그 행동들이 상대가 바라는 정답이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항상 오답이었다.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정답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답이다. 그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준은 바닥에 깊게 박히지 못하고 늘 이리저리 흔들리며 새로운 곳을 찾아 방황했다. 기준이 ‘자신’이어야 한다는 정답을 두고 방황을 오래했다. 늘 빵점자리 답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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