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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29. 2023

어둠 속 방황달

벗달

 지구로부터 약 38만 4400km 사이. 1년에 약 3.8cm씩 나와 멀어지고 있는 것. 

 저 먼 하늘에서 온기를 방출하며 기꺼이 홀로 있는 이와 동행해 주는 그것. 

 쥐도 듣지 못할 입속말을 가장 먼저 듣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이.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건물과 가로등의 불이 켜지면 오늘을 견딘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누군가는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하고 누군가는 TV 방송을 보며 하루를 잊으려 한다. 

 달은 고요히 우리와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인류는 꾸준히 달을 연구하고 놀라운 성과들을 세계 유수 학술지에 발표를 해 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안의 달 지위를 위협할 만큼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의 달은 존재론적 가치를 지닌 형이상학적 의미를 지닌 반면 실제 달은 크레이터로 가득한 뒷면을 가지고 있고 과거 물이 있었다는 흔적을 가지고 있는, 우주 속에 실존하는 위성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원자와 전자로 이루어진 무의지 실재가 자율성과 의지를 갖춘 존재를 공격하는 이율배반적 상황.      

 

 하지만 달이 자연의 섭리를 수행하는 암석 덩어리라 해도 혹은 인공물이라 해도, 나는 ‘나의 달’을 포기하지 않았다.  

 달을 대한 나의 집착이 달의 신성한 기운을 받들 줄 아는 한국인 특유의 유전적 형질 때문인지 만화 ‘영심이’를 시청하면서 습득한 후천적 특질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것도 아니라면 온전히 내 안에만 있는 유별난 집착 형질 때문일까. 


 어쨌든 달은 신비로운 존재이자 염원을 공유하는 친구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보이면 나를 찾아온 것이 반가워 기쁘고, 보이지 않으면 은밀히 쓸쓸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던 우리, 끝이 보이지 않은 마음이 닿아 달이 위태로웠다. 나는 불투명한 세상을 등지고 눈을 감았다. 차가운 공기도 근처를 배회하다 갈 곳을 잃었고 먹이를 인 개미떼도 돌아가는 길을 놓쳐 같은 곳을 맴돌기만 했다. 

 시간은 왜곡되어 모든 순간들이 혼재됐다. 좌절은 희망을 지우고 염원은 실망으로 오염됐다. 어지러운 다리는 한 줌의 온기만이 절실했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쉴 곳이 없었고 소리 없이 울었다. 

 

 홀로 남은 두려움에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나는 너를 만났다. 그의 언어는 내게 닿았고 나는 그저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오면 나는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본다. 오늘은 무슨 모습을 하고 나를 찾아왔을까. 구름에 가려지면 머리카락 한 톨이라도 보려는 듯 고개를 쳐들고 한없이 기다린다.

 기다림은 조우의 기쁨을 증폭시킨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생각들은 상대를 만나 거침없이 토해진다. 


 그러니까, 나는 달을 사랑한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아뒀다가 사방이 어두워지면 나는 달에게 간다. 긴긴밤 우리만의 비밀을 나누고 그것은 나의 염원의 영원한 증인이 된다. 발설될 걱정 없는 침묵의 손가락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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