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죽어있었다.
아, 진짜 죽었다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벌써 좀비로 되살아나 도시의 모든 위선자들과 위력자들을 물어뜯고 다녔을 거다.
내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서른이 되던 어느 무렵이었다. 스물여덟에 다녔던 두 번째 직장이 내게 진저리 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준 이후부터다.
그때부터 난 죽어버렸다. 감각도, 생각도, 감정도, 의지도, 의욕도, 모두.
빈 껍데기만 남아 지하철에 오르면 그토록 무감각할 수가 없다. 도시의 수많은 죽은 영혼들을 실어 나르는 깡통 기차. 텅 빈 눈으로 들여다보는 핸드폰, 강박적으로 쥐고 있는 경제서적, 배려 없이 앉아버린 빈자리, 열린 문으로 터질 듯이 뛰쳐나가는 정어리 떼.
이 작은 기차 깡통 안에는 이미 악취로 가득하다. 마스크를 쓰고, 도시의 죽음을 알고, 나조차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오면 공기부터가 달라졌다. 눅눅한 나무 냄새와 희미하게 머문 먼지 냄새, 그리고 일등으로 출근하는 나만 맡을 수 있는 고요의 냄새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고요란 너무도 소중하고 희귀한 자원이었다.
고작 10분도 못 누릴 만큼.
"안녕하세요."
희미했던 소음이 선명해지면서 나는 다시 죽은 고등어로 되돌아가 의례적인 인사와 형식적인 안부를 묻는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 당신의 어제 귀갓길이나 당신 남친과의 소란과 다툼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조차도 어느 순간부터는 미지근하게 고여버린다. 상대도 동태 눈깔에게 미주알고주알 말해주고 싶진 않겠지.
그렇게 마주한 네모난 사무실 안의 전경은 과히 가관이다.
서로가 서로를 욕하면서도 눈만 마주치면 상냥하게 인사하는 이를 숨긴 승냥이 떼들과 남의 모니터를 힐끔대며 힐난하기 바쁜 시기와 질투와 온정의 손길들, 또는 작금의 행태를 CCTV로 보고 있다는 도시 괴담들이 떠돌면서 오전은 후루룩 지나가버린다. 서로의 입맛을 너무 알아버려서 메뉴도 쉽게 정하지 못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비로소 집단의 권위자에 의해 메뉴가 결정된다.
팔팔 끓는 동태찌개를 바라보면서 희미한 구역감을 느꼈다. 아침 지하철에서 지겹게 본 동지들을 여기에서 또 보다니. 심지어 잘게 씹어 넘기는 것은 물론, 앞에 앉은 차장님께 역시 차장님 단골집은 맛있다며 까슬까슬한 멘트까지 발라내야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파혼하겠어요."
차장님은 또다시 전혀 안 궁금한 당신네 커플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 준비 중인데 서로 취향이 너무 안 맞아서 매일 같이 싸우고 울고불고 난리부르스를 친다는 이야기. 보글보글 끓는 냄비 위로 동태의 아가미가 뻐끔거렸다. 왜 하필 머리까지 넣어주었을까. 동태가 말한다. 푹 익히면 맛있거든.
"어머니한테 전화 왔는데, 뭐 그렇게 비싼 걸 사려고 하냐는 거예요. 자존심 상해 가지고 진짜. 결혼 전에 이렇게 간섭하는 게 말이나 돼요?"
그러게요. 남의 점심 메뉴에 이렇게 간섭하는 게 말이 돼요? 그냥 따로 먹으면 서로에게 참 좋을 텐데요.
난 사실 원래 물고기를 잘 못 먹어. 젓가락으로 쿡 찌른 동태가 뻐끔거렸다. 그런 게 사회생활이란다.
애석하게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