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너무 많으면 생기는 일

by 우당탕탕

의사가 내 뇌파사진을 보고 말했다.

"생각이 너무 많으세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저는 제가 살아온 날 중 가장 생각 없는 날이 오늘인데요.

이보다 생각을 안 하고 살면 어떻게 살 수가 있는 거죠? 다들 그렇게 사는 건가요?

오늘도 도시의 밤은 고요하다. 고요하다 못해 적적하게 느껴질 정도다. 밤은 이렇게나 조용한데, 옆집 놈은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개가 짖는 건 고사하고, 밤마다 대상 없는 세레나데를 불러대니, 대신 답해주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가 세레나데를 끝내고 랩을 시작할 때쯤엔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이대로는 몇 시간도 못 잘 텐데. 현관문 두드려봤자 서로 얼굴만 붉히고 나쁜 감정만 찌꺼기처럼 남을 거였다.


뿐이랴. 난 야무진 래퍼의 꿈을 안고 애인을 부르짖는 그의 아버지도 알고, 어머니도 알고, 하물며 그 집 개 이름도 알고 있는데.

우습게도, 아는 게 많을수록 잃을 게 많은 도시였다.

세상은 적막하길 바랐고, 도시는 소란하길 바랐다. 옆집은 시끄러웠고, 내 머릿속은 더 시끄러웠다.

잠은 오지 않고 기어코 밤은 왔다.

"팀장님, 이거 클라이언트한테 컨펌받아야 하지 않나요?"

"아니야, 하지 마. 어차피 우리가 커스터마이징 해줄 것도 아닌데."

나는 입이 딱 다물리는 습관이 생겼다. 누가 자석이라도 붙여놨나, 회사에서 두어 마디 이상을 안 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회가 새겨준 낙인이었다. 돈과 맞바꾸어 팔아버린 게 있다면 내 자유와 자아였다.

회사에 뭐 자아 찾으러 가니, 돈 벌러 가지. 친구가 말했다. 그조차 반문하지 않았다.

그래, 넌. 하루 8시간씩 자아 없이도 살 수 있어서 좋겠다.

난 단 8분도 버티질 못해서 주둥이를 닫아버리는데. 속말로 부글부글 하고 싶은 말이 들끓었다. 이게 1년이 되고 5년이 되니까 턱밑이 축 늘어진 페리카나가 되었다. 말주머니에 가득 쌓인 말을 속에 품고, 눈을 감았다. 틀려도 그냥 했다. 결과는 내가 판단하지 않았다. 난 결과를 보고 자화자찬하는 그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끝은 같았다. 내 것 같지 않았다. 저건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니야. 그조차 말로 끓었다. 페리카나처럼 턱밑을 축 늘어뜨린 채.

안타깝게도 내게 반골 기질은 있어도, 혁명가가 될 자질은 없었나 보다.

대뇌를 지배당한 채 텅 빈 강정으로 손만 움직이는 삶이었다. 돈에 의탁하여 살다 보면 머리가 텅 비어버린다. 일종의 자가학습이었다. 생각할수록 너만 손해야. 그냥 머리를 비워버려. 돈 벌려면 너를 없애버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뇌 없는 로봇팔이 되었다. 시키는 대로만 뚝딱뚝딱. 생각 없이 행동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 헐레벌떡 땜질식 처방. 처음부터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늘어놓으며 해결책을 제시하다 보면 전부 내 일이 되거나, 전부 내일이 되었다.

"다음에 해, 다음에. 지금 고민하지 말고."

하지만 지금 고민하지 않고 지어버린 지하 땅굴 때문에 서울 바닥에 구멍이 숭숭 난 것 아니오?

어김없이 사고는 꼭 일어났고, 수습은 남은 이들이 했다. 판단은 저들이 하고, 책임은 내가 졌다.


응당 세상이란 원래, 명령을 잘못 내린 장군들에 의해 졸개들이 개죽음당하는 곳이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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