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힘들어질 때면 전쟁영화를 본다.
역설적이게도 전쟁영화를 보면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 나아 보인다. 적어도 목숨은 붙어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출근이 하고 싶어지는 건 아니지만.
버터 발린 크루아상을 처먹는 장군들이 고작 1m의 땅을 갖기 위해 수천 명을 죽음의 터로 내몰았다. 그래. 원래부터 사회는 이리도 잔혹했지.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목숨들에 일말의 연민도 느끼지 못하고. 숫자에 기뻐하고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줄에 골몰한다.
총탄에 죽어가던 이들은 무얼 위하여 희생하였을까.
후대에 물려줄 땅 한평? 엉덩이 붙이고 살만한 좁은 공간?
의자 하나를 두고 일어나는 치열한 수다툼. 나는 앞에 앉은 남자가 일어날 확률과 그 옆에 앉은 남자가 일어날 확률을 관상학적으로 계산한다.
학생이라면 홍대, 신촌, 그리고 한양대와 건대입구. 아저씨라면 영등포구청, 당산, 시청, 을지로입구, 왕십리쯤 되시겠다. 애초에 자리라는 것은 모두 타이밍이었으므로, 고민은 없었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난 자리가 내 자리였다. 이력서 100곳을 넣어도, 붙는 곳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지원동기. 그래서 난 그 항목을 제일 못 썼다.
"왜 우리 회사에 지원하셨죠?"
그냥 공고에 떠서요.
내 생각을 온전히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조차도 아가리를 벌리고 입에 든 것까지 빼앗는 사람이 부지기수라서. 빼앗기기 싫으면 입이라도 꾹 다물어야지. 벌리는 순간 모가지가 달랑거린다.
미움받을 용기.
그런 건 다들 어디서 난다니. 난 미움은커녕 관심받을 용기도 없는데. 이런 사람들이 일본제국주의 시절에 창씨개명을 제일 먼저 하고 뒷방에 와서 왜놈들 욕을 오질라게 하고 다녔으려나.
그렇다면 나는 척결 대상 1순위였다.
떳떳하게 왜놈들 앞잡이라도 했으면,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았지, 독립운동이라도 했으면 평생 명예롭게 살기라도 했지.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로 사는 건 최악이었다.
희석된 삶은 본래 희미해지는 법이라.
오늘도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자리가 나면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눈을 꾹 감아버리는 몰염치들이 너무나 많아서, 양보 없는 세상에 살게 된다. 에스컬레이터 줄도 못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이리도 각박해진다. 눈앞에 서있는 초로를 알고도 감아버린다.
아예 생각조차를 닫아버린다.
봐요, 선생님. 나 지금 살아온 인생 중에 생각이 제일 없다니까요.
스스로가 파렴치한이 되어갈수록 나는 피부색을 잃어갔다. 점차 죽어갔다. 연애를 안 해서 그래. 엄마 아들이 말했다. 넌 어떻게 애를 셋이나 낳고 싶었냐? 물음을 삼켰다. 따지고 보면 그는 이 시대의 호국보훈자였다. 나는 매국노였고.
그래, 너 애국자다, 애국자야.
애를 많이 낳으면 애국자란다. 나라를 위해 애를 낳으란다. 이런 양심 없는 채권자가 또 어디있는가. 땅에 살게 해 준 값으로 애를 내놓으란다. 애를. 자식을 가져간단다. 이 땅에 남으면 어찌 될지 알면서도 낳으란다. 벌써 이렇게 썩어버린 똥통 기차에서는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바보가 되어버린 세상, 나는 오늘도 출근 기차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