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로 빠르게 흘러들어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생각했다. 아, 그냥 이대로 머리가 다 빠져버리면 스님이 되는 건가. 그럼 더 이상 회사를 안 나가도 되겠지.
스님 되는 법. 인터넷에 검색했다. 텃세가 심하단다.
속세가 싫어 스님이 되고 싶었는데, 텃세가 있다니. 세란 세는 하여간 죄다 악독한 놈들이었다. 몇 달만 쉬어도 숨 막히는 집세와 가만히 있어도 줄줄 흐르는 주민세, 소득세, 무슨세, 무슨세...
씹새.
어머. 회사에서 누가 이렇게 불량한 말을. 속으로 떠오른 말을 삭삭 지우고는 가만히 키보드만 타닥타닥 두드렸다. 사실 아무 생각 없었다. 몇 분 동안 아무 말이나 쓰고 있었다. 하필 팀장님이 일어나면 내 모니터가 바로 보이는 자리라서. 뭐라도 치는 척했다. 대놓고 카톡을 하기엔 너무 엠지스러워서.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호기와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패기는 이제 없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백전백승이었다. 꼰대들은 자신이 꼰대인 걸 잘 알았고, 엠지들은 자신이 엠지인 걸 잘 알았다. 총성 없는 전쟁은 현대식으로 일어났다.
"걔는 신입이 연차를 또 붙여 썼대? 아, 요즘엔 이런 거 말하면 꼰대라고 욕하잖아. 말 조심해야지."
분명 대상은 없는데 혐오는 팽배했다.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죄지은 사람은 늘어갔다.
이 도시엔 몹쓸 괴담이 하나 있다. 나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겪어본 적 있는 괴담이었다. 들어본 적이 없다니. 무슨 괴담이 그래.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사이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후드러쳤다.
"악!"
버스 뒷자리에서 일어나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날 한번 힐끔 보고는 유유히 하차벨을 눌렀다. 졸지에 아침부터 뒤통수를 후드려 맞은 나는 멍하니 그녀가 내리는 것만 바라보았다.
그래. 이런 게 도시 괴담이지.
남을 비난할 줄만 알지, 사과는 하나 안 하는 이런 게 괴담이지.
"이 회의를 도대체 주최한 이유가 뭐야?"
부장님이 하자면서요.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억누르고 3차 사업 범위를 확정하자고 했다. 회사 사업 범위인데 그럼 제 마음대로 하나요. 부장님은 오늘 기분이 안 좋았는지 끝내 짜증만 내다가 회의를 끝냈다.
그녀로 인해 퇴사한 사람이 벌써 1년 새 4명이었다. 7명이었던 팀은 나까지 단 3명만 남았다.
2명은 자진퇴사였고, 2명은 해고였는데, 그 2명은 근로 의욕 저하로 인해 끝내 회사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장님의 오락가락 말 바꾸기와 업무 손절, 기분에 따라 출시를 미루고, 반대 의견 내는 작업자들을 회의에서 배제시켰다.
"사장님이 너무 보는 눈이 없으셔. 이상한 사람만 골라 뽑으니까 자꾸 퇴사하잖아요."
자기 잘못을 안다는 것. 이 기본적 소양이 없는 도시야 말로 괴담 가득한 고담 시티가 아닐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점점 일뿐만 아니라 잘못조차 타인에게 미루기 급급한 사회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이제 나조차, 내 잘못을 인정해 버리는 것만큼 손해 보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