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HSP)가 사는 도시

by 우당탕탕


"내 말에 너무 상처받지 마."

입안에 독가시 같은 혀를 품은 여자의 말이라기엔 너무 다정했다. 하마터면 홀랑 넘어갈 뻔했던 나는 웃으며 안 받는다고 말했다. 아, 상처받았다고 말했으면 저 가시에 찔렸겠지. 그녀는 입으로 뱉는 공격조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경험을 선사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화를 내는 건 그녀가 내게 주는 마땅한 미션인 셈이다.

나는 그 미션을 대게는 능히 해냈지만, 속으론 곪았다.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내게 조카들에게도 안 하는 언변을 해댔다.


그리고 나는 돌아가는 깡통 기차 안에서 또다시 유튜브를 보았다.

예민한 사람 특징.

안 예민한 사람 특징 같은 것 좀 지어주면 안 되나. 왜 맨날 예민한 사람만 특정화 되어야 하나. 그들은 계속 배려 없이 살고, 왜 나만 예민함을 고쳐 써야 하나.


억울함에 눈을 감았다. 옆사람이 자꾸만 움직였다. 주머니에서 휴지를 뺐다가 넣었다가. 코를 풀었다가 입을 막고 재채기를 했다가. 바지에 닦았다. 팔이 슥슥 스쳤다. 점퍼 비벼지는 소리가 삭삭 귓가를 괴롭혔다.


제발 팔 좀 가만히 있어주길 바랐다.

내릴 역을 지나쳐버렸다.


뇌의 소리는 무시해도 몸의 소리는 무시하지 못했다. 생각은 고쳐먹은 줄 알았는데, 몸은 아니었다. 아니다 싶은 말을 들어도 허허실실 넘겼지만, 모임이 끝나면 꼭 앓아누웠다. 자그마한 소리에 머리가 아프고, 빛이 너무 환하면 꼭 암막 커튼을 쳐야 했다.

집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 나는 널 잘 키웠는데 넌 왜 그러니. 악의 없는 엄마의 말이었다. 악의가 없어서 더 슬펐다. 걱정을 가장한 비난만큼 취약한 것도 없었다. 화낼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다. 괜찮은 척하며, 다시는 그 질문을 안 받길 바랄 뿐이었다.


지인들은 내가 굉장히 둔한 성격인 줄 알고 있었다. 내 스스로의 예민함을 구술하기 전까지.

그러는 새에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고 어른인 척 사느라 지친 아이를 한 명 데리고 살아야 했다. 집에 오면 그 아이를 달래줘야 했고, 나가면 또다시 어른 인척 해야 하는 무한 이중의 삶. 한 개인의 삶이 이렇게 다중으로 연주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 피아노 좀 배워놓을 걸 그랬다.


회사에선 폭렬한 건달마냥 건반을 때려 부수고 퇴근 후에는 우아한 성모마리아처럼 낮의 일을 참회할 지어니, 이보다 시끄러운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기어코 난, 이 시끄러운 도시를 삼켜버린 이중적인 어른이 되어있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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