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작업과 해야만 하는 작업.
온라인 매체도 물성을 가진 문구용품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네이버 블로그는 한때 다이어리였다.
(이제는 벽에 붙이는 전단지가 되어버렸지만...)
유튜브는 몫 좋은 곳에 위치한 디지털 광고판,
브런치는 열심히 써보려고 구매했다가 책상 서랍에 방치된 일기장이 되었다.
제주도 생활이 2년을 향해 달려가며,
내년 이사할 도시를 슬슬 알아보고 있다.
제주도에서 모르던 나를 정말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혼자를 잘 즐기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그토록 바라고 부러워하던 "특별함"이라는 것도
이제 내 안에 조금 장착이 된 듯한 느낌도 들어서
라디오 헤드의 <Creep>을 부를 때도 기분이 달라졌다.
(I'm a creep 이 아닌, I was a creep으로 부르게 된다던지...)
정말 별거 아닌 이야기지만,
이 부분이 앞으로의 작가 생활에 커다란 축이 되어 나를 끌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작가의 삶에도 일종의 기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1기)
1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즉 내가 쓴 이야기로 돈을 벌고 싶다. 시기다.
이 시기에 다다르기까지 정말 무수히 많은 실패들을 경험해야 한다.
주로 맞이하게 되는 실패는
"하고 싶은 이야기" 나 "그리고 싶은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
그러다 조금씩 고집이 깎이게 되고,
시장에 먹힐만한 어떤 형태로 작가는 가다듬어져 간다.
그렇게 시장에서 필요한 인재가 되어 일을 하게 된다.
2기)
2기는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시기다.
어쩌면 웹툰 작가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워낙 작업 노동량이 많은 직종이라서...
한두 번의 연재를 하고 나면
내 생각보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지망생 시절에도 세상엔 괴물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시기쯤 뼛속까지 체감되는 느낌이랄까.
발전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 변화를 꾀해야 하는데,
허겁지겁 지금을 살아가기에도 벅차서 꾸역꾸역 일만 하게 되는 시기.
이 시기쯤이면 일반적으로 30대 중반쯤이 되고,
몸이나 마음 어딘가가 병 들기 시작한다.
3기)
3기는 작가들에게 진화 혹은 포기의 시기에 해당한다.
1)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삶을 조망해 보는 시간을 가지느냐,
2) 불도저처럼 꾸역꾸역 직진해서 레벨업 하느냐,
내게 2) 번과 같은 에너지는 없었다.
내가 택한 것은 1)이었고 그 시기쯤 했던 것이
[제주도로 내려온 것 / 유튜브를 하며 다른 일들을 해본 것]
이 시기쯤이 내 작가 삶의 3기였던 것 같다.
4기)
4기는 "나는 이런 것을 하기 위해 작가가 되었구나"라고 느끼는 시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이 것을 시작했던 학생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시기"
내겐 지금이 이 시기다.
3기 시절에 마련한 기반으로,
"굳이 연재를 하지 않아도 생계유지가 충분히 가능하기에 조급해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이 부분이 포인트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고,
이 것을 차근차근 조급하지 않게, 즐겁게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잘되면 좋고 안되면 다른 쪽으로 되게 하면 된다."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5기에 속한 기성 선배 작가들은 어떤 상태인지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즐겁게 해야 할 것들이 즐비해있는 요즘.
이런 것이 창작자로서의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이게 내가 한 거야!!!"라고 할만한 성과가 나온 개인 창작물은 아직 없지만,
야금야금 지속적으로 전진해가고 있고,
과정이 즐거우니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