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하나 빌리지 리조트
여행도 무르익어 일주일차 정도가 넘어가던 날이다.
-욕실에서 바퀴벌레와 도마뱀이 나오는 빠이의
'리버 사이드뷰 리조트' -밤의 테라스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여행의 마지막날, 영화 <수영장>에 나오는 [호시하나 빌리지 리조트]에 묵어보자는 말이 나왔다.
방문전 영화의 분위기를 머금고자, 급하게 결제후 영화를 본다.
태국에서는, 네이버 영화 결제도 안되고,
<수영장>은 그리 유명한 영화가 아니라, 유튜브 결제영화 목록에도 없었다.
-네이버 영화는 해외에서 작동 자체를 하지 않는다.
-결국 어느 웹하드 사이트에서 유료로 결제해서 시청했다.
영화 <수영장>
-감독 : 오오모리 미카
<수영장>은 '책임'에 대한 내용이었다.
가족의 이름앞에 놓여진 책임
영화에서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버림받은 자식이 둘 나온다.
-주인공인 딸 '사요' (청소년 시절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소녀)
-태국소년 '비이' (유년 시절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소년)
1) 사요의 엄마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일본을 떠났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호시하나 빌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사요는, 일본의 가족을 버리고 치앙마이로 훌쩍 떠나버린 엄마를 조금은 원망하며 치앙마이-호시하나 빌리지를 방문한다.
2) 비이의 엄마는 영화에서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날 비이의 엄마는 잃어버린(혹은 버린) 자식을 찾기위해 경찰서를 들른다.
비이를 돌봐주고 있는 수영장 직원 이치오는 그소식을 듣는다.
이치오는 비이와 함께 경찰서를 찾는다.
서운해하고 후회하는 인물들)
대부분의 우리는 전통적인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 대한 원죄(죄책감)를 지고 산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그게 자신일 때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사요는, 엄마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운해한다.
-엄마는, 사요의 마음을 모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다.
-비이는, 엄마를 만났지만 그녀를 엄마라 인정하지 않는다.
-이치오는, 비이를 비이의 엄마와 만나게한 걸 후회한다.
무책임한 책임감)
버림받은 동물을 지나치지 못하고 데려오는 호시하나 빌리지의 사장 '키쿠코'
-그러나 그녀는 시한부 삶이다.
이미 많은 동물을 걷어 키우고 있는 키쿠코.
-어느날은 호시하나 빌리지앞에 누군가 또 강아지 한마리를 버리고 갔다.
-키쿠코는 언제나처럼 그 강아지를 데려와 키운다.
키쿠코는 유일하게 흐릿한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바꿔준다.
이기심, 이타심)
나를 우선 바르게 세우는 것이 늘 우선이다.
엄마로서의 역할보다 내가 바로 서는게 우선이다.
딸로서의 역할보다 내가 바로 서는게 우선이다.
버려진 동물을 데려다 책임지는 것 보다, 내가 바로 서는게 우선이다.
-이기적일 수 없는 인간은 이타적일 수 없다.
역할)
사요의 엄마)
사요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사요의 서운함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야 할 마음의 동굴은 무엇일까?
-사연은 맥거핀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딸을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고 책임감 있는 행동일까?
-완벽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또다른 의미에서 나를 옭아묶는 습관이 된다.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친엄마와 살아가는 것이 비이의 행복일까?
-사회가 만든 규범이 아닌, 진정 비이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 엄마가 없는게 어때서? "
시한부의 삶이라 앞으로 책임지지 못할 동물을 일단 데려오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일까?
-세상 모든 아픔을 책임질 수 없다.
진정으로 감당 가능한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책임감이 아닐까?
어느날 저녁, 여행을 같이 갔던 동료 두명이 이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요의 마음에만 감정 이입한그들의 대화는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나고 생각해보았더니, 그때의 복잡함은 '서운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를 벗어나야만 했던 캐릭터의 마음을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빠이의 어느 히피 카페)
생각이 복잡해지던 어느날 밤, 혼자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히피-카페에 들어갔다.
세상 친절하셨던 히피들
우측은 빠이에 살고있는 히피.
좌측은 히피 친구에게 놀러온 일본인 할아버지.
중간의 소녀는 히피의 이웃집 딸.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의 연주도 좀 듣다가 시간을 보냈다.
책꽂이에서 발견한 한국어 책 두권도 읽었다.
그리고 발견한 문구하나.
"나는 약한 사람이야. 그리고 느린 사람이고,"
정말이다.
나는 참 느리다.
생각이 많다.
좀 더 선명하게 표현하자면, 생각이 폭넓게 떠오르고 깊숙한 곳까지 내려간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고 말로 꺼내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게 어느정도인지 얼마만큼인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않다.
설명한다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늘 인지하고 나와 대화나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주 이런 말을 듣난다.
1) 무슨 생각해? 2) 대답좀 해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다.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것은 힘든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해?
수없이 떠오른 생각과 언어의 파편들을 어떻게 골라서 문장화해야 할지...
-내가 생각의 병목현상에 빠져있을 때 대화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버린다.
하지만 내 나이도 이제 마흔이 넘었다.
나름의 방안을 찾아냈으니,
누군가와의 대화를 나눌 땐, 생각이 자라지 않도록 도중에 끊어버리는 것.
그러나 이 것 역시 반복되면 마음 한켠에 채 태우지 못한 생각의 장작들이 쌓여버린다.
-그래서 온전히 나만의 생각-장작을 다 태워버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진다.
"그건 사랑이었다.
<수영장>의 엄마의 사랑도 사랑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딸을 사랑했다.
감당가능한 수준까지의 모성애만 택했을 뿐이다.
모성애는 숭고한 것이지만, 부족한 모성애를 마냥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녀의 삶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을, 재단하는 것은 무례고, 오만이다.
누군가에게 완벽한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그 잣대는 그대로 나에게 돌아와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만들고 괴롭힌다.
혼자하는 여행은 관계속으로 몰아붙이고
함께하는 여행은 나를 더욱 더 혼자로 만든다.
이런저런 생각이 꽉채워 나를 짓누르던 밤,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입을 닫았다.
<호시하나 빌리지>
치앙마이의 비싼 숙소, 영화 <수영장>의 숙소
택시는 자주 이 숙소를 와본 것인지, 정확히 리셉션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일행중 동생은 '나약한 여행자들의 숙소'라는 호칭을 썼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되었다.
리셉션 - 직원들이 언제나 웃는얼굴로 있는 곳.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과한 친절을 받을 수 있다.
정갈하게 꾸며진 리조트와, 액세서리등을 보고 있자면,
교육받은 '정갈하게 다듬어진 친절'이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내가 너무 꼬여있는 것일까.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친절'
-세상은 사람을 다정하거나 친절할 수 없게 만드는 짓궃음이 있기 때문.
-완벽한 인간은 없다. 모두가 못생긴 부분이 있다.
그래도 괜찮고, 그 것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선명하게 살 수 있다.
"꾸미지 않은 선명한 내 마음"
-못생겨도 선명하다면 괜찮지 않을까?
이 곳에서 읽으면 딱 좋겠다 싶은 제목을 발견했다.
-동생말로는 베스트셀러 였다길래, 알라딘 판매점수를 찾아보았다.
어마어마하게 팔린 책임을 확인...
제목답게 딱! 좋은 내용으로 가득찬 책이었다.
-이런 에세이는 5년안에는 나도 써서 낼 생각이다. 우선 작품 하나만 더하고...
고작 1박 2일 머무는 공간이지만, 할게 많다.
-무엇보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야했다.
책은 잠깐 내려두고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차가운 물..
그리고 시켜둔 점심이 나왔다.
-호시하나 버거.
책 읽으며 먹었더니 정말 순식간에 뚝딱이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 하나는,
아! 작가님도 나와 비슷한 어떤 '경험'이 있으셨구나! 라는 것이었다.
1) 마음이 힘들어 도망쳐보았던 기억.
2) 도망친 곳에서의 어떤 깨달음.
3) 그리고 다시 복귀한 일상에서의 벽돌쌓기.
버거와 함께 먹으려 시킨 모히또. 하지만 버거를 다 먹고도 한참이나 지난후 배달되었다.
행복은 목적을 이루거나, 무언가를 달성한 순간이 아니다.
행복은 쾌락이 아니다.
무언가를 향해가는 과정이고, 일상이고, 오늘이다.
그 단순하고 낡은 말은 누구나 알고있지만 지키며 살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희귀하다.
직원분이 수영장을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조금씩 물이끼를 스왑하는 과정이 묘하게 힐링되었다.
어제도 이끼가 저렇게 있었나? 생각해 봤는데, 그렇진 않았던 것 같았다.
이끼는 얼마에 한번씩 청소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끼를 청소한다는건 물에 약품을 많이 타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얼마남지 않은 보다 만 책을 마저 읽기로 했다.
-그리고 최근 3년내내 고민중이던 것을 책의 작가와 공유했다.
" 좀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걸 그려야 할까? "
최근에 찾은 답은 "그래도 되고, 안그래도 된다." 라는 것.
당장은 그러지 않은 것에 더 매력을 느껴, 그것에 도전해 보겠지만,
이 다음것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냥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거스르지 않고 선명하게 행동해 보기로 했다.
고양이는 물을 마시고, 작가는 작품을 만든다.
혼자의 여행은 혼자인만큼 좋은 게 있고,
여럿의 여행은 여럿인만큼 좋은 게 있다.
내가 야매로 가르쳐 준 명상을, 저 멀리 동료작가님이 하고 계신다.
돌아가는 날 아침.
직원들은 여전히 역할에 충실하다.
-나름의 고충을 안고있지만, 결코 겉으로 드러내는 법 없이 완벽한 친절을 연기한다.
그들은 무엇으로 쌓여버린 장작을 처리하며 살아갈까?
여행의 마지막에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 내가 다시 또 이 곳을 오게 될 날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