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공황장애가 아니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돈 잘 버는 비혼주의자가 삶의 목표였던 내가 하루아침에 결혼을 결심하다.

by 리효

밤 9시, 오늘도 육아로 지친 육신을 간신히 눕혔다.

내 오른쪽 겨드랑이 사이에는 쌍둥이 첫째가 머리를 파묻고 자고 있고 내 왼쪽 머리맡에는 쌍둥이 둘째의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느껴진다.


4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결혼이라니!!!

아니 내가 쌍둥이 엄마라니!!!!!!!


인생은 자고로 혼자 왔다 혼자 가는 법

난 그저 돈 잘 버는 커리어우먼으로 살다가 돈 쓰고 싶을 때 쓰고 까짓 거 인생 대충 즐기다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서울에 소형아파트를 마련했고 억대까진 아니지만 나름 만족할 만한 연봉도 받고, 놀러 가고 싶으면 국내고 해외고 훌훌 떠나버릴 수 있는 자유의 몸이셨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비행기를 못 타고, 지하철을 못 타고, 버스까지 못 타게 돼버린 난 이제 집에서까지 숨쉬기 곤란한 순간을 맞이했고 홀로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 진이 빠져버린 몸뚱이를 이끌고 집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이런 내 모습이 뭔가 처량하고 청승맞고 불쌍했다. 이제 부모님께 의지하기도 애매한 삼십 대 후반… 새벽에 연락할만한 지인도 없었다.


‘아… 진짜 이건 아닌 것 같다.‘

‘결혼을 해야겠다!!!’

마치 신내림을 받는 것처럼

이것이 신의 목소리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나 선명하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병시중 들어줄 남자를 찾겠다는 게 아니다. 그냥 그 순간 내 옆에 누군가가… 날 살펴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온갖 검사를 했지만 모두 이상이 없었다. 결국 미루다 미룬 정신과를 가게 되었고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낼모레 마흔.

하루아침에 지하철도 못 타고 버스도 못 타는

공황장애 걸린 백수 노처녀가 되어버렸다.


내 인생 망한 건가? 그런 거야?


그렇다고 아직 단념하기 이르지 않은가?


누군가 말했지 노처녀의 시계는 째… 깍… 제…깍이 아니라 째깍째깍깍깍깍깍 빠르게 흐른다고

이렇게 스스로 연민에 빠져 나약하게 굴 때가 아니란 말이다 이 녀석아!!!


응급실 사건을 계기로 난 주변의 친하지 않은 지인의 지인에게까지 소개팅을 부탁했고, 식은땀이 줄줄 나고 숨쉬기가 힘든 지하철을 꾸역꾸역 타고 다니며 내 남자를 찾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행동으로 옮겼다.


조상님도 내 노력에 감동하셨는지

결국 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화려한 비혼으로 돈이나 많이 벌어 악착같이 살겠다던 내가 편의점 맥주 한 캔을 소소하게 함께 마실 수 있는 짝을 만나 이제는 어엿한 쌍둥이 엄마까지 되었다.


그동안 헛헛했던 마음과 불안했던 날들은 지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대상이 생기니 삶이 꾀나 충만해졌다.


앞으로의 글에서 공황장애로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겪으며 마주했던 혼란,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은 작은 희망들을 나누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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