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한 공황증상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공황장애에 항복하며 눈물 젖은 사직서를 쓰던 그날

by 리효

몇 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은 선명하게 기억된다. 왜냐면 어른이 되고 난 뒤, 그렇게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던 게 처음이었다. 옆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내일 당장 어디 죽으러 가는 사람인가 싶었을 거다.


아파서 회사를 그만두는 게 뭐 대수라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지만 당시에는 인생 망하는 줄 알고 꾀나 심각했었다.


어쨌든 그날은 여느 여름처럼 후덥지근하게 더운 날이었다. 집 근처 지하철역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거렸고 도저히 내 몸이 들어가지지 않았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하철만 타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특히나 출퇴근 시간, 닭장같이 빽빽한 인구밀도를 쳐다만 보고 있어도 몇 분이 채 안되어 숨이 막혀 기절할 것만 같았다. 내려야 할 역도 아닌데 그냥 막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랄까.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이 내게는 넘어야 할 큰 산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은 바로 버스.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회사라는 게 어디냐며 긍정회로를 돌리 던 그때…한 4 정거장을 달렸던가…?


아니 미친…

버스에서도 그분이 오셨다. 공. 황 님.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지하철을 타고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가며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생수 몇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꺼이꺼이 기어서라도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을 버티며 회사에 갔던 내가 나도 모르게 버스 하차벨을 있는 힘껏 누르고 본능적으로 빠르게 하차 아니 탈출했다.


나 이제 지하철도 못 타고 버스도 못 타고… 일상생활은 정말 불가능하다.

이제 못해먹겠다. 이놈의 출근도…


‘이만하면 됐어. 그동안 애썼다 진짜‘


출퇴근 때마다 반복되는 공황증상에 두 손 힘껏 꼭 쥐고 있었던 애처로운 애씀까지 순간 다 확 놓아버렸다.


대단한 커리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해온 경력은 내 자존심이고 자존감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소중한 내 자산이었다. 어정쩡한 대학을 나와서 그런지 아니면 대기업 간판 한번 달아보지 못해서인지 스스로 채우지 못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는지 난 도달하기 힘든 그 무언가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끝까지 몰아붙였다.


그 당시에는 그것들을 끊어 낼 용기를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고, 끊어내는 순간 내 전부가 부정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였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온몸에 힘이 쫙 다 빠진 채 길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담담하게 노트북을 열고

팀장님에게 퇴사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보낸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팀장님께 전화가 왔고, 울음을 애써 참으며 간신히 통화를 마쳤다.


그 뒤로 목놓아 10분은 울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집, 고요하고 고독한 빈 공간에서 불쌍한 내 울음소리만 켜켜이 귓가에 박혔다.


이제 얼마 있으면 내 나이 마흔.

빈번한 공황증상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참으로 나약하게도 내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아직까지 결혼도 못하고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라고 당시에는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했을까?


아무튼 한 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휴대폰을 켜고 깨톡을 열었다.

발이 넓을 만한 지인을 찾고 또 찾았고


소개팅을 이리저리 구걸했다. 히히


난 이제 백수

아니 공황장애 걸린 노처녀 백수 되시겠다.

뭐 어때? 이제 시간도 넘쳐흐르고

지하철은 못 타도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아?

그나저나 나 좋다는 남자가 있으려나…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놀랍게도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를 단 두 번째 소개팅으로 만나게 되었고 지금의 내 남편, 우리 아가들의 아빠가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난 불행하다고 느끼는 단편적인 감정만으로 내 삶이 결코 매몰되지 않고

절망적인 경험이 오히려 나에게 삶의 회복 탄력성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


누군가 그랬던가?

운이 좋아지는 시기 바로 직전에

인생의 깊은 절망을 한 번쯤 맛본다고


지금이 나쁘다고 해서 꼭 나쁜 건 아니고

지금이 좋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듯이


어르신들이 하는 그 말씀들.

오래 살고 볼일이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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