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도 일처럼 꼼꼼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공황장애 예비신부
나 같은 사람 많으려나? 매사에 무거운 일이든 가벼운 일이든 심각하고 진중하게 받아들여 도무지 즐기지를 못하는 사람. 현재에 집중을 못하고 미래의 걱정에 머리가 꽉 차버려 현재와 미래 그 어디에도 오롯이 서지 못하는 스스로가 항상 답답했다.
이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단 한번, 뭐 요즈음에는 재혼 삼혼도 종종 보이지만 그래도 일생일대의 행복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도 오만가지 걱정에 불안하기만 했다.
삼십 대 후반에 어렵게 만난 인연이 갑자기 깨져버리면 어쩌지? 싸우지도 않았는데 파혼을 걱정하고, 결혼해서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이혼당하면 어쩌나? 아침드라마가 딱히 취향도 아닌데, 갑작스러운 행복이 찾아와서 그런지 형체도 없는 걱정의 꼬리의 꼬리를 물고 또 물어 새벽을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생각보다 빈번한, 아니 실시간으로 마주치는 내 걱정과 불안의 뿌리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많았다. 그건 바로 실패와 실망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오롯이 마주칠 자신이 없어서 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노 단위로 촘촘한 계획과 머릿속의 수십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돌리며 정말 돌아버리고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예상치 못한, 아무리 작은 사건 사고라도 계획에 없는 것들은 그냥 다 싫었다. 마치 숨기고 싶은 나의 부족한 면이 빼꼼히 드러날 것만 같아서였다.
결혼, 이것은 무엇인가? 일생일대의 유일한 주인공이 되는 날이 아닌가? 그리고 세상의 한번뿐인 소중한 날이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애석하게도 관심받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주인공이 되는 건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 결혼식을 비롯해 관련된 기타 등등의 잔챙이 이벤트들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다.
솔직히 결혼식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 서서 굳이 굳이 내 신랑은 누구이고 우린 어떻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좀 우스워 보였다. 자고로 결혼은 그냥 둘이 잔잔하고 가끔은 서로를 챙기며 애틋하게 사이좋게 살면 되지 아니한가? 하아…그러나 아빠와 예비신랑이 절대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섰다. 이유는 모두가 눈치챘겠지만 뿌린 축의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뭐 남들처럼 아리따운 드레스도 입어보고 좋지 뭐… 하며 억지 긍정회로를 돌렸고,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엑셀 시트를 열고 계획을 하나씩 짜기 시작했다. 얘야~이건 그냥 결혼식이란다. 대충대충 즐기면서 좀 해도 되고 뭐 좀 빼먹는다고 누가 잡아가거나 쪽을 주는 것도 아니야 알겠지? 네가 그냥 다 와구와구 말아먹어도 되는 거라고… 나에게 친하게 지나는 어른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면 이런 충고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기 마련이다. 살던 대로 살아야지. 결혼 준비의 시작은 엑셀 시트 맨 윗줄부터 빽빽하게 결혼 체크 리스트를 채워 나가는 것이었다. 결혼식을 중심으로 결혼과 관련된 상견례, 웨딩홀 예약은 어디로 할지 1인당 식비 예산을 고려하고, 스드메는 어느 정도 퀄리티를 바라는지 레퍼런스를 찾기 시작했다.
마치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팀장이 된 것 같았다. 결혼식 관련 업체들은 마치 회사 협력사 같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난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무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주던 과거 남자친구 겸 현재 남편에게도 뜬금없이 불만이 생겨버렸다.
“아니 왜 남자들은 결혼 준비에 숟가락만 올리려고 하는 거야?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나만 이렇게 까지 스트레스받아야 돼?”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결혼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지만 한쪽이 군말 없이 따라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 고마운 거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더라. 사람이란 원래 모두가 원하는 게 있지만 그걸 꾹 참고 여자 쪽에서 하고 싶은 대로 따라 준 것도 어려운 일이라던데 난 그땐 그걸 모르고 마냥 편한 남편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결국 남편에게 내가 신혼여행지로 가고 싶은 하와이로 여행 계획을 짜라며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버렸다. 떠넘기는 순간에도 성에 차지 않게 해오기만 해 봐라 라는 못 된 심보를 부렸고 과연 남편이 잘 짜올 수 있을지 솔직히 의심만 가득했다.
결과는 기대치가 낮았는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뭐 나름 만족스러웠고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써 덤덤하게 반응했다.
남편이 의외로 준비를 잘해서였는지 어느 순간부터내 두 손으로 꽉 쥐고 있던 결혼 준비의 모든 것을 좀 느슨하게 풀어놨다. 마치 회사에서 부족한 부분은 협력 업체를 쓰는 것처럼 결혼식에 쓰일 신랑 신부 소개 영상, 축가, 드레스를 비롯한 스드메 등등 나노 단위로 참견 아닌 참견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지만 모든 걸 내려두고 그냥 맡겨 버렸다.
그랬더니 스트레스가 조금은 가라앉았고 여유시간이 점차 생겨 남편과 결혼 준비에 대한 이야기도 차분히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좀 내려놓았다고 결혼 준비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없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 한 명 퇴사한다고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바로 흔들리진 않는다. 무슨 일이든 내가 주체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손에 쥐고 끌고 가게 되면 결국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나이다. 결혼식은 그냥 진정한 결혼으로 가는 하나의 절차가 아니던가? 결혼의 본질은 오롯이 둘의 행복이다. 결혼의 본질을 항상 되새기며 형식적인 절차들이 그 본질을 흐리지 않게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화려한 결혼식이 중요하다며 둘의 관계에 갈등이 생겨버리면 그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다.
아무튼간에 실패와 실망의 감정을 마주치기 싫어서 매사의 철저한 계획의 계획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던 나는 결혼 준비를 계기로 아주 조금 변하고 있었다. 내가 이것을 왜 하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지 목적과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고 해 나간다면 사사로운 부정적 감정에 나약하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든지 막 즐기진 못해도 미리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자. 그 부정적인 기운들이 내가 집중해야 하는 순간 발휘해야 하는 에너지를 미리 잡아먹는다는 사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