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사라진 세상의 나.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의미와 가치를 잃어 내가 희미해진다.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이 잡념만 넘쳐흐르는데 공허하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웃었던 게 언제인가, 어떻게 웃는 거였더라. 웃기 위해서는 웃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흉내를 내듯 표정 지어야 한다. 다른 이의 생각을 헤아릴 수가 없다. 맨정신보다 취해있을 때에 느끼는 취기를 온기로 착각하며 가까스로 버틴다. 세피아의 서늘하고 탁한 색감. 육안으로 명도의 구분만 가능하다. 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꾸역꾸역 살아가는 듯하다. 난 죄다 모르겠지만 인생의 최저점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글이 부흥한 세상의 나. 절실히 고대하던 르네상스. 밝아오는 아침이 매일같이 반갑다.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고 참여한다. 자연의 색채와 음악의 선율이 더해져 나는 크리스마스 입체카드처럼 뚜렷해진다. 좀처럼 웃지 않는 날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감화시키는 대화 속에 놓인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도,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아도 글을 써보려 한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을 꺼내어 놓는 것만으로 의외로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알고 있었음에 보람을 느낀다. 모르고 있었음에 설렘을 느낀다. 글은 내가 살아온 이유와 살아갈 이유를 담고 있다. 나는 점묘화를 그리는 붓처럼 이곳저곳에 점을 찍으며 자유로이 춤을 춘다. 글을 통해 시야가 확장된 나는 이제 삶을 단편적 실패로 보지 않고, 수많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를 이루는 예술적 구성물로 재해석한다.
글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많이 쓰이고 읽히는 글이 되어야 한다. 글은 나를 바꾸어 곧 세상을 바꾸기에. 글, 그을, 어감도 왠지 애틋하고 아련하다. 모든 것을 품을 존재같이 느껴지는 커다란 단어. 글을 닮고 싶다. 내게 글감을 제공하는 주위의 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자그마한 감사를 되도록 자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