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나의 오래된 취미이자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이다. 아직 닿지 못한 세계를 슬쩍 엿보게 하고, 어쩌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희망을 심어준다.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이상을 만난다. 이상은 상상의 가장 고운 얼굴이다. 현실의 언어로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 가능성, 그게 나를 움직인다. 그렇게 잠재의 나는 조금씩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를 향해 걷는다. 그것이 어쩌면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간혹 상상은 나를 너무 멀리 데려간다. 이상이 지나치게 반짝이면, 현실의 나는 눈부심에 눈을 감아버린다. 그때부터 상상은 환상으로 변한다. 환상 속의 나는 너무 완벽하고, 현실의 나는 너무 결함투성이다. 그 두 세계가 충돌할 때, 나는 분열한다. 상상은 더 이상 나를 살리는 불씨가 아니라, 나를 쪼개는 칼날이 된다.
그래서 가끔은 헷갈린다. 상상과 망상 사이엔 대체 뭐가 있을까. 꿈꾸는 일은 필요하지만, 꿈에 취하는 건 위험하다. 상상은 현실을 확장시키지만, 망상은 현실을 삭제한다. 그 사이엔 아주 얇은 경계가 있다. 그리고 그 위를 나는 매번 비틀거리며 걷는다.
그럼에도 나는 상상을 놓지 못한다. 상상은 어쩌면 인간이 가진 가장 품위 있는 무모함이니까.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는 한 손과, 허공을 향해 뻗는 한 손 사이에서 — 나는 여전히 상상한다. 두 손이 맞닿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 불가능을 믿는 일 자체가 이미 나다운 상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