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초점, 어디를 주시하시는지도 모를 눈동자. 시선 마주침이 서툴고 어려운 어르신이 계셨다. 입사 첫 달, 근무할 때마다 늘 찾아봬 인사드리면 이불을 기우시는 동작과, 털실을 뽑으시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이셨던 어르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우리 아기가 어쩌고 어째"라고 말씀하셨던 어르신. 그리고 "미안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수차례 읊어대던 어르신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인지가 있으시고 없으시고를 떠나 이런 다정스러운 어르신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또한 식사 수발을 들 수 있는 것도 고마웠던 요양원 사회복지사의 첫 달이란 기억이기도 했다.
그러나 입사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가까워질 무렵 늘 반겨주던 어르신의 손에 힘이 없어지고, 혼자 식사하기조차 버거운 상태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수저로 죽을 드려도 힘겨워하시던 어르신.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을 맞아 어르신께 직접 식사 수발을 해드렸다. 웬일인지 이를 꼭 다물고 입을 벌리시지 않길래, 어르신 마음을 천천히 달래 드리며 간 죽을 10회 정도 떠드리고, 보리 차도 섞어가며 나름의 대접을 해드렸다 생각 든 것이 어르신과의 마지막 식사가 되고 말았다.
식사를 수발했던 저녁, 어르신은 늦은 밤 임종하셨다. 다행스러운 건 고통 없이 조용히 가신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90살 어르신의 연세. 앞으로 백수를 앞둔 10년만 더 사셨다면 어떠하셨을까? 어머니의 주검을 모시고 가려던 보호자 아드님. 어르신께서 평소 말씀하시던 성인이 된 그 아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사실만큼 사셨다"라고...... 또한 요양원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오히려 내가 미안했던 맘이 컸음에도 말이다. 어머니가 자주 사용하던 말을 아드님도 사용하신 것이었다.
"미안해요, 감사해요" 가장 많이 전해주신 말씀 받들어 사회복지사로서 화는 줄이고, 감사가 더 커가는 시간이 지속되길 맘 깊이 다시 다짐한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기나긴 여운을 전해주고 떠나신 어르신. 요양원이 그런 곳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