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_요양원 속으로

가족인 줄도 모르고 쓰는 연하장

by 웃는식

한해를 마감하는 연말은 매년 다가온다.

이때 또다시 하나의 이벤트가 시작된다. 요양원에서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송년 행사와 연말 감사 카드 쓰기가 그 이슈이다. 특히 입사 후 처음 맡게 되는 연말 감사 카드 쓰기 시간은 그 어떤 때보다 큰 책임감을 갖게 했다.


'아니 인지가 저하되신 어르신은 어떻게 쓰지? 그분과 빙의되어야 하나? '


요양원 어르신들께서는 대부분 직접 글을 쓰거나 쓸 능력이 부족하다. 대필 혹은 대신 써드리는 것이 연말 감사 카드 쓰기의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더 주의할 점은 편지를 받는 가족 혹은 받지 못하는 가족이 나누어지면 어르신 본인도 보호자들도 실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족들께 연말 감사 카드를 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면서 95세 A 여성 어르신 옆에서 편지 쓰시는 것을 돌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정확히 자녀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쓰여있었으며, 두 통의 편지 중 하나는 우편 발송할 예정이었고, 한 통은 강당에 전시된 감사 카드 나무에 게시할 예정이었다.


오후 시간에 맞춰 95세 A 어르신을 모시고 트리가 전시된 강당으로 산책 겸 나갔다. 마침 어르신께서 직접 쓰신 카드가 전시돼 있었으며, 그 내용을 재차 설명해 드렸다. 어르신은 천천히 글을 읽어 나가셨다. 속으로 95세가 되신 어르신이 총기도 있으시고 글도 잘 아시는구나. 속으로 감탄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연세쯤 되시면 글을 배우지 못한 세대로 착각했던 내 잘못이었다. 어르신은 글이 좋다며 웃으시는데 그 미소가 아름다우셨다. 은빛 백발에 아직까지 건강한 이를 드러내며 웃으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은 사진의 한 컷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 몇 시간 전 쓴 카드 내용이란 걸 모른다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어르신도 요즘 중년 세대들도-나를 포함-좀 전에 했던 일을 잊어 먹곤 한다. 이럴 때일수록 앞뒤 양옆을 잘 돌아보자. 천천히 어르신께 내용을 설명해 드렸다. 어르신께서는 말씀하신다.


" 이게 내가 쓴 거야?"


헛헛하게 웃으시며 다시 방으로 워커를 끌고 돌아가시려는 어르신의 뒷모습. 추억을 잃을 수밖에 없는 아픈 치매, 그저 마음이 짠해지는 순간, 짧지만 여운이 긴 시간이었다. 정말 미소가 아름다우셨던 어르신. 건강히 계실는지, 살아 계신다면 100수를 아마 채우셨을 것이다.


출처 작은 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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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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