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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엉 Feb 24. 2019

그들은 사랑을 했나

영화 <렛미인>, 로맨스로 교묘하게 위장한 호러

 12살 소년, 영원한 사랑을 만나다. 영화 <렛미인>의 홍보 문구다. '영원'과 '사랑', '뱀파이어 소녀'와 '외로운 소년'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로맨스 영화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로맨스로 교묘하게 위장한 호러 영화에 가깝다.


 <렛미인>의 전개는 호러 영화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인다. 한 동네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연쇄 살인, 괴물의 존재, 사건을 추적하는 이와 계속해서 발생하는 피해자 등이 그 예다. 영화 후반에는 훼손된 신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렛미인>이 단순한 호러 영화로 보이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이엘리'에 있다. '이엘리'는 기존의 호러 영화 속 뱀파이어의 전형성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호러 영화 속에서 괴물은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으로서 다루어졌다. 괴물은 ‘죽여야 하는 존재’로, 이들을 죽여야 이전의 평정 상태로 회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괴물은, 두려운 존재임과 동시에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고전적인 뱀파이어는 이성을 유혹한 뒤 해치는 섹슈얼한 존재로 묘사됐다. 그들이 흡혈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성적 충족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들은 유혹과 강간의 경계를 흐리는 악한 존재임과 동시에 인간의 성적 욕망을 폭로하는 존재인 것이다.

노스페라투(Nosferatu, A Symphony Of Terror, 1922)와 드라큐라 (Dracula, 1931)

 그러나 이엘리의 '어린 여자아이'라는 외양은 그를 '괴물'의 이미지로부터 분리한다. 이엘리의 외양 때문에 이엘리와 오스칼의 관계는 동갑내기 아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처럼 비춰지며, 이는 <렛미인>이 로맨스 영화로 느껴지도록 관객을 속인다.


하지만 이엘리는 12살의 순수한 아이가 아니며, 그녀는 여전히 뱀파이어의 섹슈얼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엘리와 호칸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원작 소설에서는 호칸이 소아성애자라고 묘사되었으나, 영화에서는 호칸이 오스칼의 나이였을 때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이엘리와 함께한 것으로 암시된다.


둘 중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둘의 관계는 연인 관계로 추측된다. 이엘리와 오스칼이 함께 있는 모습을 훔쳐보고, “오늘은 그 애를 만나지 말아줘”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호칸이 오스칼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음을 보인다. 이엘리는 충분히 혼자 살인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인간인 호칸을 시켜 피를 구한다. 호칸은 식기를 씻듯 피를 담을 도구를 설거지하고, 능숙하면서도 어설프게 살인을 한다. 살인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호칸은 자꾸만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경찰에 붙잡힌다. 그는 스스로 얼굴에 염산을 부으며 이엘리를 끝까지 보호한다. 이엘리는 그런 호칸의 피를 마신 뒤 창밖으로 호칸을 던져버린다. 오랜 시간 자신에게 헌신해온 인간이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죽이는 모습은 '괴물'같다.


호칸을 죽인 뒤, 이엘리는 오스칼을 찾아가 나체로 오스칼의 침대에 들어간다. 이 장면에서 천진함이 느껴졌던 이유는 오로지 오스칼의 순수함 때문이지 이엘리 때문이 아니다. 이엘리는 오스칼을 만지기까지 한다. 보지 말라는 이엘리의 말에 끝까지 이엘리를 보지 않던 오스칼은, 영화 후반에는 옷을 갈아입는 이엘리를 훔쳐본다. 오스칼의 성적 성숙이 드러나며 둘의 관계가 좀 더 섹슈얼해졌음을 보이는 부분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엘리에게 성적 정체성 혼란이라는 퀴어적 특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오스칼이 이엘리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훔쳐볼 때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이엘리의 성기에는 거세된 흔적이 있다. 또한, 이엘리가 오스칼에게 “내가 여자 아이가 아니라도 좋아할 거야?”라고 묻는 장면 역시,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의미심장한 대사다.


 이엘리의 외양뿐만 아니라, 무분별하게 사람을 죽이지 않는 점 역시 그녀를 괴물처럼 보이지 않게 한다. 대부분 직접 살인을 하지 않고, 배고픔을 참으며, 가끔씩 호칸이 구해오는 피를 마신다. 즉, 그녀는 어느 정도 사회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이엘리는 "나는 살기 위해 살인을 하는데, 너는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냐"며 오스칼에게 자신의 정당성을 호소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다른 이를 죽여야 한다고 호소하는 이엘리의 모습은 다소 ‘인간적’이다. ‘괴물’ 이엘리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모순된 상황인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정당화한다. 이는 이엘리가 오스칼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스칼은 학교폭력 피해자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폭력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오스칼은 항상 칼을 품에 넣고 다니며, 자신이 들었던 모욕적 언사를 그대로 연습하는 폭력적인 면모 역시 가지고 있다. 자신의 동네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이엘리는 이러한 오스칼의 모습을 파악하고, 오스칼에게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라고 조언한다. 상상으로만 가해자들에게 대항하던 오스칼은 이엘리의 조언을 들은 뒤, 가해자 코니를 장대로 때려 물리적 상해를 입힌다. 코니가 겁을 먹은 모습을 보며,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억압해야 함을 깨닫는다. 이때 오스칼이 코니를 때릴 때 사용한 장대는 호칸이 이엘리가 죽인 시체를 처리할 때 사용하고 버린 장대로, 오스칼이 미래에 호칸의 역할을 이어받을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엘리가 오스칼을 괴롭히는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을 때도 오스칼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살인 행위를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으로 완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렛미인> 단순한 호러 영화로 보이지 않는  번째 이유는 감각적 과잉이다. '과잉' 멜로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렛미인> 시각적 과잉이 두드러진다. 영화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색감 대비가 극명하다. 영화 내내 보이는  눈으로 덮인 배경과, 하얀 벽지로 도배된 이엘리의 , 그리고 오스칼의 모습은 유독 차가운 색감을 가졌다. 머리카락부터 속눈썹, 피부까지 흰빛을  소년은, 흑발에 짙은  눈을 가진 이엘리와 대비되며 뱀파이어인 이엘리보다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차가운 색감은 오스칼의 소외감을 부각한다. 오스칼의  색은 대부분 푸른 계열이며, 오스칼이 푸른빛의 수영장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유일하게 오스칼이 붉은 옷을 입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했을 때뿐이다. 아버지와 있을    아이다운 천진스러움을 보이는 오스칼은, 아버지의 붉은색 옷을 겉에 두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술을 마시며 오스칼의 존재를 잊자 바로 붉은 옷을 벗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오스칼의 침실은 오스칼이 지내는 공간  유일하게 붉은 색감을 가진 공간이다. 이곳에서 오스칼은 이엘리와 모스 부호로 소통한다. , 오스칼에게 붉은색은 결핍의 충족, 안정감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엘리는 이러한 붉은빛이 두드러진다. 오스칼과 대조적으로 붉은색 옷을 자주 입으며,  옷을 입고 있다가도 오스칼과 함께 있을 때면 옷에 피를 묻히거나 붉은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마저 오스칼에게는 공포의 의미가 아니다. 오스칼은 피의 맹세를 하자며 스스로 칼로 손을  정도로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스칼이 이엘리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이엘리가 초대받지 않으면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이는 장면에서도 이를 확인할  있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오스칼을 노려보는 이엘리의 모습은 충분히 공포스럽지만, 정작 오스칼은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이엘리에게 공감하고 그녀를 안아줌으로써 이들의 관계는 다시 회복된다.


 또한, 청각적 과잉도 두드러진다. 많은 호러 영화들이 소리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렛미인>은 비현실적으로 조용하다. 오스칼과 이엘리의 대화는 대부분 짧고 함축적이며, 심지어 둘은 모스부호로 대화하기도 한다. 이엘리의 살인 장면 역시 기존의 호러 영화들과는 다르다. 기존의 호러 영화가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비명 소리를 들려주던 것과는 다르게, 롱 숏으로 살인 현장을 관망하듯 보여준다. 이때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비명소리가 아닌, 이엘리의 거친 숨소리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수영장 씬에서도, 물 밖에서는 이엘리가 잔인하게 사람들을 도륙하고 있는데도 물속의 오스칼과 관객들에게는 그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이 같은 고요함은 이엘리의 잔인성을 감춘다. 오히려 천진하게 웃는 오스칼의 얼굴과 오스칼을 바라보는 이엘리의 눈을 클로즈업하며 멜로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오스칼은 소외감과 학교 폭력, 이엘리는 뱀파이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이들이 겪는 각자의 장벽은, 이들의 관계를 공고히 한다. 오스칼과 이엘리는 정서적 교감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에서 도주한다. 이러한 결핍의 충족 과정이 ‘사랑’으로 보이기에, <렛미인>은 멜로드라마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둘의 관계를 사랑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엘리에게 당한 피해자 중 하나인 버지니아는 괴물로 변하는 자신을 깨닫고, 스스로 햇빛을 받아 분신한다. ‘사람을 해칠 수 없다’는 인간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엘리는 자신의 살인에 죄책감이 없다. 심지어 살인조차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을 구하고, 이들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살인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들의 인간성마저 없앤다. 이러한 이엘리에게 ‘사랑’과 같은 인간성을 기대할 수 없다. 오스칼과 이엘리의 교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엘리의 삶은 길고, 인간의 삶은 짧다. 그들의 교감은 잠시일 뿐이고, 오스칼은 호칸처럼 여생을 보낼 것이다. 오스칼이 늙으면 이엘리는 또다시 자신에게 반지를 줄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그렇기에 <렛미인>의 결말은 비극적이고, 인간이 괴물에게 사로잡혔다는 점에서 충분히 호러적이다.



참고 문헌     

1. Langford, Bary(2005). Film Genre. 방혜진 옮김(2010). 『영화장르. 할리우드와 그 너머』. 한나래.

2. [네이버 지식백과]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세계영화작품사전 : 공포영화,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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