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느낌대로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던가
그런데
뿌리지도 않았는데
거둘 수 있는 곳도 있다
그건 바로 마당에서
홀로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수박이다
생명이란
참으로 질기면서도
참으로 무심하다
어느 날 문득
바짝 마른땅에서
싹을 틔우고
굵은 자갈을 헤치며
보란 듯이 저 많은 넝쿨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자랄까 궁금했다
역시 생명은 강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다
엄지손톱만 한 꽃이
듬성듬성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수박을 키우고 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매일 자라는 수박을
남몰래 엿보는 것도
제법 달콤한 일상이 되었다
집 앞 텃밭에도
심지 않은 수박이
교묘하게 달려 있다
둥근 자연석을 따라
줄기를 뻗어가더니
그 중간쯤 숨어 있는 걸
한참이나 지나 우연히 봤다
분명한 건
적어도 이 수박들은
씨 없는 수박의 후손일 리는 없다
우리는 지난해
수박을 먹은 적은 있어도
직접 심은 적은 없으니
짐작컨대 그때 먹은 수박은
분명 씨 있는 수박이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수박이 익어가는 요즘
이 많은 수박은
언제 다 열렸을까
수박밭을 지키는
농부 아닌 농부이자
매일 이곳을 지나가는
나그네라 할 수 있는
이 길고양이는
이렇게 많은 수박이 열리게 된
그 내막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지 않을까
길고양이가
급한 볼일 보러 가는
바로 그 텃밭에
유독 많은 수박이
주렁주렁 열린 걸 보면
안도현 시인이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수박씨 함부로 뱉어라
너는
누구에게 이토록 달콤한 여름을 선물한 적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