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무름의 정도

by 작가의숲

요리의 핵심은

'익힘의 정도'라고 했던가


그런데

과일을 고를 때는

'무름의 정도'가 중요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빠가 좋아하는

살구를 꽤 많이 샀다


갓 샀을 때

정말 싱싱해 보였고

겉모습만큼이나

맛도 상큼하고 달달했다


"너무 무른 것은

상큼한 맛이 떨어지는데

약간 단단한 게

오히려 더 달아"


오빠는

이렇게 과일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말하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살구는 살짝 무름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일 무르는 건

한 발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는데

그다음 단계로 가면

사람이 절대 따라잡을 수 없지"


오빠의 말은

늘 이렇게 철학적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인간이 따라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인생에서는

조금의 무름 현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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