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힘들지는 않습니다만

18.09.04(화)

by 어깨아빠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드럼까지 쳐야 해서 어제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나갔다. 당연히 아내랑 애들도 같이.교회에 도착해서 난 드럼 치러 올라가고 아내랑 애들은 앞 쪽에 앉았는데, 몸부림치는 시윤이 때문에 아내가 어쩔 줄 몰라하다가 본당 뒤쪽으로 가는 게 보였다. 소윤이는 앉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혼자 남은 소윤이가 가만히 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일어서서 찬양하시는 분들에 가려져서 소윤이를 볼 수가 없었다. 찬양을 마치고 소윤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얼른 내려갔는데 소윤이가 혼자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소윤아, 왜 울었어? 혼자 있어서?"

"응"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아빠랑 있으면 돼"


뒷 쪽에 나가 있던 아내는 시윤이가 하도 난리라서 결국 웬만한 시장 바닥보다 더 시끄럽고 예배에 집중하기 힘든 자모실로 갔다. 소윤이는 어제처럼 아주 얌전히 잘 있었다. 오늘도 든든히 아침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처럼 설거지도 쌓여 있고 거실도 난장판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출근했다. 너무 귀찮고 피곤했다.


출근할 때부터 피곤하고, 일 할 때도 피곤하고, 퇴근할 때도 피곤하고, 집에 와서도 피곤하고, 자기 전에도 피곤하고, 하루 종일 피곤했다.


퇴근하고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다 왔어?"

"어, 나 이제 엘리베이터"

"아, 그래? 우리는 놀이터야"

"아, 그럼 나 어떻게 할까?"

"그러게, 어떻게 하는 게 빨리 들어갈 수 있을까?"

"글쎄"

"그럼 여보가 가지밥 해놓을래? 원래 저녁에 가지밥 하려고 했거든"


아내가 레시피를 알려줬다. 파 잔뜩 기름에 볶다가, 돼지고기 넣어서 볶고, 가지도 넣어서 볶고, 간장 조금 넣어서 볶고, 그걸 쌀 위에 붓고 불 올리면, 끝.


이렇게 많이 넣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파를 잔뜩 썰어서 볶았다. (나중에 보니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냉동실에 있는 여러 고기 중 가장 지방이 없는 고기가 안심이니 잘 찾아서 써보라는 있으나마나 한 단서를 가지고도 용케 안심을 찾아냈다. 가지는 애들 먹기 좋으라고 좀 작게 토막 냈는데 나중에 보니 형체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와 애들은 한참 더 있다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내가 막 재료 썰고 있을 때쯤 돌아왔다.


'뭐지,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도대체 왜지'


고요함과 적막함이 깨지는 게 괜히 아쉬웠다.


가지밥은 성공적이었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아주 잘 먹었다. 소윤이는 처음 떠준 밥을 다 먹고 또 떠 달라고 해서 먹었다. 확실히 소윤이는 기름에 볶거나 튀긴 고기의 향과 맛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시윤이는 그냥 다 좋아하고.


어제와 같이 자연스럽게 취침 준비로 넘어갔고 소윤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전혀 저항이 없었다. 낮에 통화할 때도 그렇고 퇴근하고 만났을 때도 그렇고 소윤이가 짜증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어린이집 다닐 때는 퇴근하고 나서 재우기 전까지 특정 타이밍이 되면 특유의 표독스러움이나 까칠함이 있었는데 그런 게 없었다. 한 2주, 낮잠을 안자다가 아침잠이긴 해도 어쨌든 충분히 자는 덕분에 피곤함이 덜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괜히 생각을 그렇게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심리적으로 어린이집 갈 때 보다 더 평온하고 편안해 보였다. 아직 이틀밖에 안됐지만 어쨌든 잘 지내는 건 물론이고 더 안정된 것 같기도 한 소윤이 모습을 보니 그간 불안했던 마음이 좀 사라졌다.


친구들을 못 만나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내랑 있을 때 하원 시간에 맞춰 베란다에 나가서 다른 친구들 내리는 것도 보고 멀리서 서로 반갑게 인사도 하고 그랬다는 걸 보면 내 걱정보다 훨씬 상황 수용을 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소윤이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는 이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오히려 아내가 걱정스러워서 매번 묻는다.


"오늘은 어땠어?"


소윤이 어린이집 다닐 때는 늘


"소윤이는? 괜찮아?"


라고 물어봤는데. 아내 대답도 아직까지는 거의 비슷하다


"그냥 뭐, 괜찮았어"


내 느낌이 맞다면 소윤이가 낮에도 아내를 극한으로 몰아붙이지는 않는 것 같다. 오후 및 저녁 시간대의 아내와 소윤이의 쾌적한 관계 유지를 위한 핵심 열쇠는 낮잠이다. 이번 주는 새벽기도 때문에 낮잠 재우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 낮잠은 잔 효과를 누리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졌으니 일단 다음 주까지 좀 봐야 할 것 같다. 부디 쭉 이어져야 할 텐데.


아내가 나에게


"운동하러 갔다 오면서 내일 목장 모임 때 먹을 밤식빵 같은 것 좀 사다줘"


라고 부탁해서 근처 빵집에 갔는데 빵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조금 더 멀리 있는 빵집에 자기가 다녀오겠다면서 나갔다. 잠시 후 아내가 돌아왔는데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기다란 빵을 들고 있었다.


"여보, 목장 모임 취소됐어"

"그래? 그럼 그 빵은 뭐야?"

"아, 빵집에 다 갔는데 딱 취소됐길래 그냥 오기 뭐해서 하나 샀지, 평소에 내가 먹고 싶던 걸로"


많이 먹고 싶었나 보다 앉은자리에서 거의 절반을 먹었다. 서비스가 형편 없어졌다며 이제 안 가야겠다고 평가한 카페에서 산 아이스라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