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6(월)
애들이 엄청 일찍 일어났다. 난 비몽사몽이었는데 잠깐씩 정신을 차릴 때마다 한 명씩 없어졌다. 처음에는 아내랑 서윤이가 없고, 그다음에는 소윤이가 없고, 그다음에는 시윤이가 없고. 아내가 나 좀 더 자라고 문을 닫는 걸 봤는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문이 열려 있었다. 그러더니 서윤이가 내 옆에 앉았다.
“아빠아아아아아아. 아빠아아아아아아아”
“어, 어. 서윤아. 이리 와. 잘 잤어?”
거부하지 않고 내 위로 몸을 포개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그러고 서윤이는 다시 나갔고 난 조금 더 눈을 붙였다. 꿈속에서 이상한 괴성이 계속 들리길래 불쾌했는데 눈을 떠 보니 거실에서 시윤이가 진짜로 내는 소리였다. 그냥 소리가 아니라 뭔가 짜증 내는 소리였다. 내가 나가면 또 갑자기 태도를 바꿀 게 뻔하니 조금 더 있다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훈육을 위해서는 ‘방으로의’ 공간 이동이라는 장치도 필수니까, 그냥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시윤이는 괴성을 멈추고 갑자기 아내의 말을 잘 들었다. 아내와 시윤이는 따로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아내에게서 이전에 없던 내공이 느껴졌다. 육아 전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시윤이를 대할 때’의 아내에게서 느껴지지 않던 강인함을 말하는 거다.
아내가 어제 자기 전에
“여보. 내일은 오전에 애들 공부도 하고 평소처럼 일과를 좀 보내려고”
라고 얘기했다. 내가 있을 때, 즉 서윤이를 완전히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아이들이랑 깊게 공부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공부하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집안일 수행 시간이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특히 소윤이가 그랬다. 빨래도 개고 설거지도 하고 방 정리도 하고. 말로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고생하는 것 같아서 약간 안쓰러웠다. 그래도 소윤이가 기쁘게 하는 거 같고, 배움과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꾹 참고 모르는 척했다. 자기 일을 다 마쳤을 때 최선을 다해 칭찬과 격려만 해줬다.
서윤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짜증이 많았다. 아침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배고픔을 표현할 길이라고는 울음과 짜증뿐이니 이해는 된다. 아침 먹고 나서는 기분이 좋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 또 툭하면 울고 성내고 그랬다. 쪼그만게 어찌나 악악 거리면서 호통을 치는지. 다 져주고 받아주는 소윤이와 시윤이도 참 착하다고 생각했다. 배고픈 게 아니라면 졸려서 그럴 가능성이 컸다.
“여보. 서윤이 평소에 이렇게 일찍도 자?”
“거의 12시 넘어서 자기는 하는데, 가끔 엄청 졸릴 때는 일찍 잘 때도 있어”
짜증을 내며 바닥을 뒹구는 서윤이에게 얘기했다.
“서윤아. 졸려? 아빠랑 코 잘까? 방에 들어갈까?”
서윤이는 일어나서 자기가 스스로 방에 들어가더니 자기 자리에 누웠다. 나도 따라서 들어가긴 했지만 서윤이는 거의 바로 잠들었다. 진짜 졸려서 그랬나 보다. 그래도 그렇게 군말 없이 알아서 들어와서 눕다니. 소윤이와 시윤이 때는 보지 못한 생소한 광경이다.
재우고 나와서는 바로 점심 준비에 돌입했다. 점심은 콩국수였다. 면을 삶아서 콩국물만 부으면 되니까 번거롭지는 않았다.
“소윤아, 시윤아. 되게 조용하다. 서윤이 없으니까”
“맞아여”
오늘도 서윤이 덕분에 한가롭게 점심을 먹었다. 평소에 서윤이 ‘덕분에’ 너무 부지런히 밥을 먹을 때도 많으니 이런 날도 있어야지.
사실 서윤이보다 아내가 더 졸렸다. 성인이니 짜증을 안 냈을 뿐, 졸림의 정도로 따지면 아내가 몇 배는 더 졸려 보였다. 어제랑 비슷했다. 앉으면 졸고, 누워도 졸고. 어제처럼 책을 읽겠다고 책을 펼쳤지만 역시나 한 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심지어는 밥 먹는 시윤이 앞에 앉아서 기다리며 시윤이를 보다가 졸았다.
“아이고, 시윤아. 엄마 졸았니?”
“네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은’ 어디라도 나가자며 아침부터 나의 답을 재촉했다. 일단 나가는 건 약속할 테니 그만 채근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좀 나들이 기분도 내고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적당한 곳을 떠올리지 못했다. 또 멀리 나가자니 번거롭기도 하고 돌아올 때 피곤할 것도 같고. 날씨는 덥고. 어디든 사람도 많을 테고. 그냥 오늘도 집 근처에서 놀기로 했다.
“여보. 여보는 좀 자.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갔다 올게”
“혼자? 셋 다?”
“어”
“에이. 아니야 같이 나가”
“좀 자. 너무 피곤해 보이네”
“에이 그래도. 혼자 셋은 너무 힘들어”
아내가 잠깐이라도 좀 쉬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 것 같았다. 아내는 그럼 서윤이라도 두고 가라고 했지만, 언니와 오빠만 나가는 걸 보면 서윤이가 어떨지 뻔했다. 낮잠도 이미 자고 난 뒤라 재우는 걸로 진정시키기도 어렵고. 서윤이도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날은 무척 뜨거웠다. 날이 뜨거운 것도 있었지만 우리가 너무 뜨거운 시간에 나가기도 했다. 그저께 갔던 놀이터에 가서 놀려고 했는데 더운 건 둘째 치고 너무 뜨거워서 놀기가 어려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30분만 뛰어놀아도 탈이 날 그런 뜨거움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놀이터는 안 되겠다. 너무 뜨거워서 너네 쓰러져. 저기 그늘 있는데서 놀자”
거기는 그냥 보도블록이 깔린 길이었다. 차도 바로 옆은 아니고 큰 길에서 놀이터로 가는 사잇길 같은 곳인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고, 그늘이 넓게 져서 놀기에 좋았다. 더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위험해 보이는 태양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랑 캐치볼도 하고 무선 조종 자동차도 가지고 놀고 줄넘기도 하고 킥보드도 타고 뛰기도 하며 놀았다. 볼이 새빨개지도록.
서윤이는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서 언니와 오빠가 노는 걸 보며 즐거워했다.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줬는데 서윤이 때문에 힘들고 그런 건 없었다. 내려와서도 언니와 오빠가 노늘 걸 구경하기도 하고 낮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놀기도 했다.
그 별것 없는 곳에서 두 시간을 놀았다. 슬슬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렇게 놀아도 아쉬운 듯 ‘이제 가자’고 하니 조금만 더 놀자고 했다.
“우리 한살림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자”
굳이 아이스크림 얘기를 안 했어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끝까지 버티고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그냥 기분 좋으라고 사줬다. 서윤이도 시원하게 목 좀 축이게 하려고 포도즙도 샀다. 우리 동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도 먹고 포도즙도 먹었다. 서윤이는 포도즙이 입에 안 맞았는지 처음 몇 모금은 인상을 쓰면서도 삼키더니 그 다움에는 뱉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첨가물이 하나도 안 들어간 진짜 포도즙이었다. 너무 셨나 보다.
아내는 그때 나왔다. 좀 잤는지 그냥 쉬었는지 아니면 또 그걸 못 참고 뭔가 일을 했는지는 못 물어봤다. 사실 그때는 나도 체력을 꽤 많이 소모한 상태라 내 한 몸 건사하는 것에도 큰 집중이 필요했다. 바로 집에 안 들어가고 자연드림에 들러서 장도 보고, 카페에 들러서 커피도 샀다.
서윤이는 오고 가는 길에 몇 번이나 잠들 뻔했지만 아내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어제의 일이 떠오르는지 서윤이를 깨우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 다만 잠이 안 들었을 뿐, 언제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졸려 보였다. 소윤이만 먼저 저녁을 먹이기로 했다. 바닥에 누워서 손을 빨며 뒹굴다가 언제 잠들지 몰랐다.
졸리기도 했지만 배도 고팠나 보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샤워도 미리 시켰다. 우리(서윤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저녁 먹는 동안 혼자 기다리다가 잠들지도 모르니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녁 식탁에 앉았다. 의외로 서윤이는 잠들지도 않았고 짜증도 많이 내지 않았다. 물론 마지막에는 피곤이 극에 달했는지 1초에 한 번씩 짜증을 냈다.
난 방전이었다. 눈 감으면 30초 안에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는 상태였다. 소윤이는 나의 상태를 간파했는지 안마를 해주겠다며 엎드리라고 했다. 그대로 깜빡 졸았다. 잠깐 엎드렸는데 바로 잠들었다. 물론 엄청 잠깐이었다. 한 몇 분.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와, 나 진짜 열심히 했다. 3일 내내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