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5(주일)
서윤이가 예배 시간 중간쯤부터 너무 떠들어서(말도 못 하는 것이)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역시나 안아주니 금방 잠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서도 깨지 않았다.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점심 먹을 때, 서윤이가 잔 건 엄청 오랜만이었다. 아내가 말해줘서 깨달았다. 덕분에 모두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서윤이 차에 태우면 깨겠다. 배고플 텐데”
“집에 가서 밥 먹여야지 뭐”
그 대화가 끝나자마자 서윤이가 깼다.
“여보. 좋다. 밥 먹이고 갈 수 있어서”
처음에는 잠이 좀 덜 깼는지 칭얼댔다. 이래가지고 밥을 먹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진정됐다. 그냥 계속 안고 달래고 이것저것 대령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상전으로 모시는 게 아주 일상이다. 들깨 칼국수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였다. 다행히 잘 먹었다. 서윤이도 은근히 입이 관대한 편이다.
집에 와서는 잠시 쉬었다. 물론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쉬려고 노력했다. 아내도 나도 무척 졸렸다. 둘 다 머리만 대면 자는 걸 넘어서 엉덩이만 붙이면 눈이 감겼다.
“아, 소윤아. 아빠 방금 코 골았어?”
“아하하하. 네”
“아, 그래? 계속?”
“계속은 아니고”
아내도 나랑 비슷했다. 읽어야 할 책이 있어서 책을 펼치기는 했는데 한 장 넘기는 동안 수십 번은 고개를 떨궜다. 책장 한 장을 넘기기는 했나 싶다. 아무튼 정말 피곤하고 나른한 오후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블록을 꺼내서 놀았다. 다른 이유는 없고 아내가 혼자 있을 때는 그냥 그 볼록이 거실에 펼쳐져 있는 것만 봐도 뭔가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거기서 파생되는 서윤이의 짜증(언니와 오빠의 놀이를 방해하는 것을 방해받는 것에서 유발되는)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내가 있으면 아내는 잠시 뒤로 물러날 수 있으니 불가능의 영역에서 가능의 영역으로 바뀌는 일들이 생긴다.
저녁에는 잠깐 마트에 다녀왔다. 뭘 사야 하는 건 아니었고 그냥 외출의 명분이었다. 소윤이는 스타필드에 있는 마트에 가자고 했다. 거기 가면 조금이라도 더 외출하는 느낌이 나서 그랬나. 소윤이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주말이라 사람이 너무 많을 거 같았다.
“소윤아. 그런데 오늘 주말이라 사람 엄청 많을 텐데? 사람이 많은 건 둘째 치고 주차장에 들어가는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걸”
“아빠. 엄마가 그럼 일단 스타필드 근처에 가서 차가 많은지 보고 없으면 들어가고 많으면 다른 마트로 가자고 하시는데 그건 어때여?”
“그래. 그러자 그럼”
역시 사람 아니 차가 많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우와. 소윤아, 시윤아. 안 되겠다. 다른 마트로 가야겠다”
화장실 청소솔 하나 사고 식품관 한 바퀴 돌면서 소윤이, 시윤이 간식과 우유, 아내의 간식을 산 게 다였다. 시간으로 따져도 엄청 금방이었다. 뭔가 너무 아쉬우니 앤티엔스 프레즐을 사서 나눠 먹었다. 서윤이의 시야 뒤에 숨어서 몰래 먹었다.
집에 가면 저녁을 먹어야 했다. 보통 때라면 뭘 먹어야 할지 고민했을 텐데 오늘은 아내도 나도 마음이 편안했다. 어제 엄마와 아빠가 주신 족발이 있었다.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여보. 밥 뭐 먹을지 고민 안 해도 돼서 너무 좋다”
“그러니까”
족발이라는 게 좋은 것보다 그냥 뭐가 됐든 저녁 먹을 게 준비되어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진심으로. 휴일이 긴 만큼 끼니 고민도 일이 되는데, 그걸 한 번 덜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사실 아내랑 아침부터, 냉장고에 고이 대기중인 족발을 얘기하며 어찌나 든든해했는지 모른다.
소윤이는 살코기만 먹었고 시윤이는 껍데기도 좋아했다. 소윤이가 껍데기를 떼어서 시윤이에게 줬다. 시윤이는 작은 뼈다귀는 직접 잡고 뜯어먹었다. 소윤이도 더 어렸을 때는 안 가리고 잘 먹었던 것 같은데 언제인가부터 기름지고 물컹거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나에게는 다소 서운한 일이지만 음식의 취향은 그야말로 존중받아야 하는 영역이니까.
서윤이는 살코기만 잘게 잘라줬다. 엄청 잘 먹었다. 너무 빨리 없어져서 혹시 안 삼키고 입에 모아뒀나 봤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그럼 바닥에 떨어뜨리고 흘렸나 싶어서 봤는데 물론 그것도 아니었다. 정말 다 먹은 거였다. 거기에 밥까지 먹고.
“소윤아, 시윤아. 아빠 내일도 출근 안 한다. 좋지?”
“아빠. 너무 좋아여”
언제나처럼 애들도 애들이지만 아내가 더 좋아했다. 오늘도 영화를 보기로 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서윤이가 낮잠을 두 번이나 잤다. 특히 두 번째 낮잠은 마트에 갈 때, 꽤 늦은 시간에 잔 거라 밤잠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냐 하면, 재우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들어가자마자 잠들었다. 서윤이는 계속 나가자고 울다가 안 먹히니까 물 달라는 핑계를 대며 나가자고 했다. 아내는 한 번 속는 셈 치고 나와서 물을 먹이고 다시 들어갔는데 마찬가지였다. 또 물 마시고 싶다면서 나가자고 울고. 아니 어쩜 애들이 다 똑같은지. 태어나기 전에 뱃속에서 서로 주파수로 공유하나.
더 신기한 건 그렇게 고생을 해도 아내의 태도 안에 ‘분노’나 ‘짜증’은 없다는 거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냥 거기까지다. 이 또한 막내의 위력이리라. 아니면 오늘이 마지막 휴일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영화를 봤다. 서윤이는 영화가 막 끝났을 때 한 번 더 깨서 나왔다. 아내와 나는 괴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약간 반가운 느낌이었다. 자기 전에 활동하는 서윤이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구나를 새삼 깨닫고 싶으면 아이 둘을 낳으면 되고, 나도 이렇게 인자한 사람이었구나를 깨닫고 싶으면 셋을 낳으면 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