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뛰고, 오후엔 젖고, 저녁엔 효도

21.08.14(토)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늘도 치과 진료가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이라 아침 먹고 부지런히 준비해서 서둘러 나갔다.


“아빠. 오늘은 우리 어디 안 가여?”

“오늘? 오늘은 그냥 집에서 기다려야지”


아내가 혼자 나간 김에 이럴 때 진짜 제대로 된 자유시간을 좀 누리도록 하면 좋으련만, 주말의 광활한 시간은 나의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아주 잠깐, 한 0.5초 정도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 듯도 하다. 당연히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아내가 집에서 나가고 난 뒤의 집 상태가 영 엉망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리’의 행위가 하나도 없었던 탓이었다. 나도 주말의 특수를 이용해 좀 늘어졌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엄마한테 갈까? 버스 타고?”

“진짜여?”

“어. 엄마 몰래 가서 기다렸다가 놀래켜 줄까?”

“좋아여. 좋아여”


더 깊은 계획은 이거였다. 아내가 타고 간 차의 보조 열쇠를 들고 가서 미리 차에 타고 있다가 아내가 타면 깜짝 놀래 주기. 그때부터 흥분이 되면서 신이 났다. 지난주를 생각하면 오늘도 치료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끝날 것 같았다. 서둘러야 했다. 이미 어느 정도 시간을 까먹은 뒤였다. 그렇다고 해도 난장판인 집을 그대로 두고 나가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소윤아, 시윤아. 얼른 집을 치우자. 아빠는 설거지 할게. 소윤이랑 시윤이가 거실에 어질러진 것 좀 치워줘”


소윤이와 시윤이는 빨리 마쳐야 엄마가 끝나기 전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움직였다. 나도 설거지에 속도를 붙였다.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서 택시라도 타고 갈 생각까지 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을 내나 싶은 생각이 들 만도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택시도 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옷을 모두 갈아입고 현관에 서서 기다렸다. 혹시 모르니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도 빠른가?”

“지금 출발 직전”


비보였다.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이미 차에 탔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슬픈 소식을 알렸다.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금방 집에 돌아왔다.


“뭐야? 나가려고 했어?”

“엄마. 우리가 엄마 치과 앞에 가서 놀래 주려고 했어여”


아내를 놀래켜 주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 아쉬워하다가 문득 ‘잠깐 치과 가는 것도 못 참고 코앞까지 쫓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과 ‘아내도 착하네. 정말 치과만 딱 다녀오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나갈 준비가 다 끝난 마당에 바로 집에서 나왔다. 지난번에 소윤이, 시윤이랑 밤 산책할 때 잠깐 들렀던 놀이터에 가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만 해도 ‘오늘은 날이 선선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막상 나가 보니 꽤 더웠다. 요즘 날씨가 항상 이렇다.


놀이터에 가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것저것 타고 노는 동안 난 주로 소윤이와 시윤이를 쫓아다녔다. 다행히 서윤이가 유모차에 잘 앉아 있어서 아내가 서윤이를 맡아도 힘들 게 없었다. 나중에는 소윤이, 시윤이랑 같이 엄청 뛰었다. 덥긴 했지만 또 가장 더울 때처럼 아무것도 못 할 정도의 더위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에 너무 집에만 있어서 떨어진 소윤이와 시윤이의 체력을 기르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같이 열심히 뛰느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서윤이도 유모차에서 내려와 같이 놀았다.


“와 소윤아, 시윤아. 진짜 많이 뛰었다 그치?”

“아 너무 더워여”

“그래도 재밌었지?”

“네. 우리 다음에도 이렇게 뛰자여”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땀이 흥건해지니 시원한 음식 생각이 났다. 냉면 같은 걸 먹자고 할까 생각했는데 아내는 샤브 칼국수를 얘기했다. 어떤 면에서는 파스타보다 더 좋아하는, 그러니까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지도 모르는 게 샤브 칼국수였다.


“그럴까? 그래. 거기 가면 에어컨 있으니까 시원하겠지”


내 생각만큼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준수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모두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었다. 외식할 때는 서윤이도 언니, 오빠와 같은 걸 먹는다. 매 끼니 따로 챙길 여유 따위는 없다. 셋 다 잘 먹었다. 그래도 가장 잘 먹은 건 아내였다. 아내가 나보다 더 늦게까지 숟가락을 들고 있는 상황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아내가 끝까지 숟가락을 잡고 볶음밥을 긁어먹었다.


“와, 여보. 진짜 물놀이하면 딱 좋겠다”

“그치? 이렇게 더울 때 시원하게 들어가면 진짜 좋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급히 인터넷으로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일 만한 곳을 빼고 또 빼다 보면 갈 데가 없었다. 무의미한 검색이었다. 지난번 울산에 갔을 때 계곡에 간 것 말고는 제대로 물놀이를 못한 게 내가 다 아쉬웠다. 더군다나 오늘 같은 날씨에 물 한 방울도 못 묻히다니. 무슨 애처가의 아내도 아니고.


잠시 한살림에 들러서 장을 보고 카페에 가기로 했다. 바로 집에 가는 건 아쉽기도 하고, 차에 타면 서윤이가 잠들 것 같았다.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팥빙수도 먹기로 했다. 서윤이는 모두의 바람대로 타자마자 잠들었고 유모차에 옮기고도 무사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옮기면서 깬 적이 거의 없다. 여러모로, 돌이 되도록 잠 때문에 고생 시킨 것에 비해 나머지 잠에 관련된 상황에서는 순하기가 그지없다.


카페에 머물 수 있는 제한 시간은 ‘서윤이가 깰 때까지’였다.


“여보. 아쉬운 대로 애들 목욕이라도 시켜줄까? 너네 목욕할래? 여보 목욕해도 괜찮죠?”

“어, 그래. 목욕할래?”


사실 소윤이는 이제 욕조에서 목욕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재미가 없다고 했다. 여전히 좋아하는 시윤이에게 맞춰 주기 위해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할 때가 많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해 줄까를 고민하다 나도 같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들어가서 내가 과녁이 되어서 물총받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오늘은 아빠도 같이 해여”


이런 게 마음이 통하는 건가. 소윤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서윤이도 같이 하기로 했다. 언니와 오빠만 데리고 들어가면 거실에서 대성통곡이 벌어질 게 뻔했다. 물에서 노는 것도 워낙 좋아하고(서윤이에게 물놀이란, 슬프게도 좁디좁은 화장실 욕조에서 한 게 전부지만).


욕조에 물을 받고 한 명씩 차례대로 넣었다. 서윤이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들어가는 큰 욕조에 같이 넣었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넘어지지도 않고 너무 잘 놀았다. 다만, 욕조가 너무 좁았다.


“아야, 아야. 시윤아 시윤아”

“아, 아, 누나아 누나아”


이런 소리가 난무했다. 열악한 환경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쳤다. 온몸으로 물총 세례를 받아내고 찬물 공격도 받아내고.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윤이도 나름대로 즐겁게 즐겼는데, 끝까지 같이 하기에는 좀 추울 거 같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더 집중하기 위해서 먼저 내보냈다. 이제 말을 다 알아들어서 나가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고개를 막 저었지만, 아내에게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큰 울음소리가 밖에서 들렸고, 중간에 문 두드리며 우는소리도 들렸다. 다시 데리고 들어올까도 수십 번 넘게 생각했지만, 꾹 참고 소윤이, 시윤이와 노는 데 집중했다.


저녁에는 잠시 (내) 엄마, 아빠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 월요일이 아빠의 생신이었는데 코로나 분위기 때문에 그냥 통화만 하고 말았다. 뭔가 죄송스럽고 아쉬웠는데 마침 오늘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온라인 모임이 취소가 돼서, 남는 시간이 생겼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제안했는데 모두 흔쾌하고 기쁘게 받았다. 혹시 모르니 엄마의 동태는 아내가 전화해서 파악했는데, 다행히 어디 안 가고 집에 계신다고 했다.


“소윤아, 시윤아. 대신 우리 축하만 해 주고 잠깐 앉아 있다 오는 거야. 알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이라며 각각 과자와 껌을 하나씩 샀다. 소윤이는 자기 용돈으로, 시윤이는 특별 지급금으로. 정성스럽게 편지도 썼다. 케이크도 사고.


엄마와 아빠는 당연히 깜짝 놀랐다. 바로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고 각자의 선물을 전달했다. 아빠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과자, 껌 선물을 보고 엄청 웃으셨다. 미리 예고하지 않고 가서 그런가 더 반가워하셨다. 자고 갈 거 아니니 걱정 말라고 해서 그런가.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왔다. 복숭아 한 상자, 오이지, 고구마, 족발을 받아왔다. 누가 누굴 축하하러 간 건지 헷갈리는 답례품(?)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헤어질 순간이 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든지 이해가 됐다. 아무리 알고 있어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 그래도 이제는 둘 다 아쉬워할 뿐 더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딱 건강한 감정 표현 수준이다.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삼 남매 모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들었다.


“아, 여보. 애들 화장실 안 갔다 왔다”

“아, 그러네. 도착하면 잠깐 깨워야겠네”

“그러게.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범하다니”


사실 그게 아니었더라도 이제 셋을 한꺼번에 데리고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은 깨우긴 해야 했다. 그게 소윤이일 가능성이 제일 컸겠지만. 아무튼 오늘은 도착해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깨웠다. 둘 다 너무 졸려서 정신을 차리는 데 한참 걸렸다. 서윤이는 방에 눕히니까 깨서 울었지만 잠깐 토닥여 주니까 또 금방 조용해졌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해 방에 들어갔다.


“소윤이가 눈이 너무 간지럽다고, 쉽게 다시 못 잠들어서 좀 더 기다려 주는 중이에요”


아내와 나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아내가 소윤이를 재우는 동안 난 영화 볼 준비(과자 구매)를 했다.


“와, 여보. 엄청 늦었네?”

“그렇지. 영화 보기 시작한 시간이 늦었으니까. 여보. 그래도 우리에겐 하루가 더 남았어”

“아, 대박. 진짜 너무 좋다”


이 정도로 기뻐하는데 그냥 주 4일 근무도 법제화해주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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