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3(금)
며칠 전에 소윤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아빠는 왜 맨날 베개 밑에 핸드폰을 넣고 자는 거에여?”
“아, 알람 울리면 바로 끄려고”
“왜여?”
“너네도 깨면 안 되니까”
"그럼 알람 울리면 바로 꺼여?”
“그렇지. 사실 알람 울리기 전부터 깨는 날도 많아”
“왜여?”
“혹시나 알람 못 들을까 봐”
“못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어여?”
“거의 없지”
알람 소리를 못 들어서 지각한 적은 거의 없다. 휴대폰이 꺼져서 아예 알람이 안 울린 적은 있어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한 불필요한 불안인지, 아니면 그 불안 덕분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 아침에도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일어나서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출근한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아내의 입장에서는 이게 탈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디 오늘은 남편의 출근을 부러워하지 않는, 평탄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집에서 나왔다.
아내는 며칠 전에 한 카페의 이벤트에 당첨이 됐다.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면 추첨해서 쿠키 한 상자를 주는 거였는데 그게 당첨이 된 거다. 그 카페가 처가댁 근처였고, 아내는 오늘 그 쿠키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간 김에 잠시 장모님도 뵙고 오고.
“여보. 오늘 늦게 오나?”
“늦게 오지 않을 생각으로”
어차피 저녁에는 교회를 가야 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늦게 온다고 하면 집에 안 들를 생각이었다. 잠시 후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아, 오늘 여보 교회 가는구나. 잊고 있었네”
저녁 시간의 육아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걸 잠시 잊고 있다가 깨달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설령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혼자가 아니다’라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한 게 육아다. 그 생각조차 할 수 없게 정말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남았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약간의 충격파는 있었을 거다. 어차피 집에 가도 혼자인데 그냥 저녁까지 먹고 잘 준비도 모두 마치고 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혹시나 아내의 마음이 바뀌었을까 싶어서 퇴근하고 바로 전화를 했다.
“어, 여보”
“어디야?”
“집에 가고 있어”
“아, 그래? 목소리에 힘이 없네. 힘들어?”
“그런 건 아니고, 좀 졸리네”
그저 졸린 거라고 하니 다행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고작 30분이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시간의 효율을 무시할 만한 일이니까.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아내 친구가 서윤이 타라고 보내준 무소음 자동차(?) 때문이었다. 매트 위에서는 탈 수가 없으니 매트를 걷고 맨바닥에서 시승 행사가 벌어진 덕분에 집이 왠지 모르게 어지러웠던 거다. 매트가 없었어도 ‘저 자동차를 집에 두는 게 맞나’ 고민을 했을 텐데 매트까지 있으니 더 고민이 깊어졌다. 일단 고민은 미루고 충분히 즐기도록 그냥 뒀다. 서윤이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더 신나서 탔을 뿐만 아니라 서윤이가 자기도 타고 싶다고 우는데도 그걸 외면하고 주인 행세를 했다. 우리 집의 대원칙은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소유는 없다’지만, 그래도 통념과 상식 수준에서의 선은 존재한다.
“소윤아, 시윤아. 무조건 서윤이한테 양보해 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윤이가 저렇게 우는데 모르는 척하고 너네가 타는 건, 그것도 바람직한 건 아니야. 알았지?”
글로 쓰니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꽤 무섭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시간쯤이면 졸리고 피곤해서 뭔가 활력이 떨어진다. 교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나를 가장 환영한 건, 또 서윤이였다. 집에 왔을 때처럼 두 팔을 쭉 뻗고 좌우로 돌리며
“아빠아아아아아악”
을 외쳤다. ‘진짜 깨물어 주고 싶다’는 표현이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으면 막내딸을 낳…
아내와 나는 오늘(도) 야식을 정해뒀다. 오늘은 떡볶이였다. 떡볶이도 즐거웠지만 더 기쁜 일이 있었다.
“여보. 월요일에 쉬어. 좋지?”
“아, 맞다. 대박. 너무 좋다”
금요일 밤이 가는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으며, 불안한 기상을 하루 미뤄도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떡볶이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