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7(화)
고작 하루 더 쉰 건데 유독 이번 주말은 더 길었던 느낌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내도 그랬다. 직장인에게 휴일이 끝난 뒤 첫 출근 날은 불치의 병과 같은 영역이다. 아내도 나랑 비슷할 거다. 아니 어쩌면 더 할지도 모른다. 슈퍼마리오 게임하면서 별 먹고 아주 잠시 무적이 되어 막 뛰어가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끌어올리기가 힘드네”
나와 아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윤이도 그렇다고 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워있는 서윤이 사진을 보내며 얘기했다.
“서윤이 기운이 없네. 너무 피곤하냐니까 그렇다는데”
“서윤이가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다고?”
“서윤이 너무 피곤해요? 이러니까 응 이러던데”
“뭐야. 서윤이 개운해요? 이래도 응 이럴걸”
아무튼 워낙 붙어 지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조금만 달라져도 딱 안다. 서윤이의 대답이 진짜 대답이었는지는 몰라도 평소랑 다르게 자주 눕고 뭔가 힘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열이 나는 건 아니었고. 아내는 어제 졸린데 늦게 재우고,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싶다고 했다. 거기에 어제 더운 날씨에 바깥에 오래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프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혹시 전초전일까 봐 걱정은 된다.
시윤이도 후유증을 앓았다. 아내는 점심시간쯤 시윤이와 훈육의 시간을 가졌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요즘은 자세한 상황은 묻지 않는다. 크게 의미가 없다. 힘든 과정을 거쳐 바라는 결과를 이뤄냈는지, 아내와 시윤이의 마음은 멀쩡한지만 물어본다. ‘마무리는 좋았다’는 아내의 말에 얼마나 많은 생략과 축약이 담긴지는 모르지만, 일단 믿는다. 진짜 진짜 힘들면 아내도 티를 낼 거라고 생각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아주 늦게 점심을 먹었다.
“어후. 진짜 힘들다 오늘”
아내의 중간 소감이었다.
“여보. 스벅어플에 카드 있음. 선물 받은 거. 나갈 일 있으면 써”
아내의 고독한 월요일 같은 화요일을 달래는 나의 선물(?) 이었다. 아내는 온라인 기도모임이 끝나면 가야겠다며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내가 퇴근하기 전에 집에서 나가보지 못했다.
서윤이는 요즘 밥 먹을 때 꼭 자기가 숟가락을 들어야 한다. 아예 처음부터 두 개를 준비한다. 하나는 서윤이 주고, 하나는 내가 쥐고 먹이고. 서윤이는 손에 든 숟가락을 한 번도 쓰지 않는다. 숟가락은 두고 손으로만 집어먹는다. 군대에서 진짜 총을 메고 근무를 섰지만 막상 그 총을 써 본 적은 없는데 약간 그런 느낌이다.
서윤이는 낮잠을 두 번이나 잤는데 두 번째 낮잠은 자기가 혼자 방에 들어가서 뒹굴다가 잤다고 했다. 정말 피곤하긴 했나 보다. 퇴근하고 봤을 때는 멀쩡해 보였다. 다른 날처럼 날 잘 반겨주고 애교도 많이 부렸다.
사실 서윤이가 아니라 아내가 정말 피곤해 보였다. 서윤이가 상태가 안 좋은 건 아니었는데 뭐 좀 하려고 하면 아기띠를 가지고 와서 자기 안아달라고 그러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결국 많이 안아줬으니 몸은 몸대로 축나고.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정성스럽게 끓인 비지찌개가 저녁 반찬이었다. 비지찌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 최상위권에 속하는 음식이다.
“여보. 맛있어?”
“어, 맛있지”
대답은 간결했지만, 행동에서 진심이 드러났을 거다. 비지찌개를 향한 거침없는 숟가락질이 계속됐다.
소윤이와 시윤이하고는 밥 먹고 아주 잠깐 짬을 내서 테니스 공을 주고받았다. 어제저녁 먹고 시윤이하고 했었는데, 소윤이는 저녁을 꾸물거리며 먹은 대가(?)로 하지 못했다. 오늘은 소윤이가 평소와 다르게 엄청 부지런히 먹길래 ‘소윤이가 오늘은 되게 열심히 먹네’라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소윤이는 빠르게 밥그릇을 비우고 식탁에서 내려오자마자 나에게 얘기했다.
“아빠. 테니스 공 어디 있어여?”
그러더니 씨익 웃으며 테니스 공을 가지고 왔다. 시윤이도 덩달아 바쁘게 먹고 내려왔다. 그래 봐야 15분 정도였고 집 안에서 주고받는 거였지만 소박한 소윤이와 시윤이는 만족했다. 소윤이는 오른손으로도 왼손으로도 공을 잘 던졌다. 아내의 양손잡이 기질을 물려받았나 보다. 시윤이는 확실한 오른손잡이고. 조만간 글러브를 사서 제대로 캐치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또 했다. 애들이랑 진짜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하는 날이 온다면 하루 종일 공원에 가서 노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진심으로.
아내는 피곤함이 한계치에 달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애썼다. 자기 전에 읽는 책을 소윤이가 고르는 날이었는데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골랐다. 엄청 긴 책이다. 아내가 읽으면서 시간을 재 봤는데 20분이나 걸렸다. 아내는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서, 역할에 맞는 목소리로 바꿔가며 읽어줬다.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서 말했다.
“여보. 나 스타벅스 갔다 올게”
아내는 라떼와 스콘, 애호박, 계란을 사서 돌아왔다. 월요병 같은 화요병이 스콘과 라떼로 치유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일도 전쟁 같은(일정이 그렇다) 하루가 예정된 상황에서 잠시의 쉼을 누리는 데 도움을 주는 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