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나들이의 즐거움과 피로의 쓰나미

21.08.18(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바쁘다고 했다. 하긴 안 바쁜 날이 없지. 항상 바쁘지만 오늘은 육아와 집안일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오전에는 온라인 목장 모임을 해야 했고, 오후에는 차로 1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이동해야 할 일도 있었다. 아내는 어제 자기 전에 나에게


“여보. 내일 내가 저녁을 준비할 수 있을까?”


라고 물었다.


“아니. 불가능. 여보가 집에 4시에 도착해도 준비 못 할걸. 힘들어서”


잠정적으로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가든 밖에서 사서 집에 가서 먹든 집에서 준비하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마침 오늘은 나도 오전에 정신없이 바빠서 아내에게 따로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아내는 점심시간쯤 오늘의 첫 카톡을 보냈다.


“나 오늘 진짜 짱이다. 오전에 엄청 많은 것을 하고 늦지 않게 출발”


아내는 오전에는 매일 반복하는 일상, 그러니까 밥 차리기, 집안일, 아이들 공부까지 모두 소화했다. 거기에 목장 모임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일정에 늦지 않게 제시간에 출발했다는 건 아내가 굉장히 정신을 바짝 차렸다는 얘기다. 몰아치는 일상 속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니 아내가 저녁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아내가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예정 시간이 6시 40분이라고 했다.


“여보.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하늘 봤어?”

“아, 그래?”


아내 말을 듣고 창 너머의 하늘을 보니 정말 파랬다. 점심 먹으러 밖에 나가기도 했는데 그제서야 하늘을 보다니. 여전히 덥기는 해도 마음의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는 듯한 하늘을 보니 뭔가 밖에 있고 싶었다.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갈 곳이 없었다. 시국도 시국이고, 저녁도 먹어야 하고.


“여보. 거기 갈까 그럼?”

“어디?”

“우리 조만간 가자고 했던 곳”

“어디 말하는 거야? 진짜 모르겠어”

“음, 지금 말할 수가 없네”

“어디?”

“(엄청 작게) 이케아”

“아 그럴까?”


살 게 있어서 언젠가 가긴 해야 했는데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평일에는 굳이 시간을 내서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었다. 오늘이 기회였다. 저녁도 거기서 먹기로 했다. 엄청 오랜만에 가는 거라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나름 특별 데이트의 느낌도 내고. 주차장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이것저것 많이 고른다고 골랐는데 한 그릇의 양 자체가 생각보다 적었다. 우리의 입은 여전히 다섯 개고. 애들 나눠주고 뭐하고 하니 먹을 게 별로 없었다.


“여보. 배 안 부르지?”

“괜찮아”

“아니, 괜찮다 안 괜찮다가 아니라 배 부른지 안 부른지를 말해봐”

“음, 뭐 먹었어?”


뭐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끝을 모르고 커지는 몸뚱아리도 좀 쉬겠지.


사려고 생각했던 건 딱 두 개였다. 굳이 쇼룸을 다 돌지 않고 살 거만 사서 집에 갈까 하다가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서운해할지도 모르니 잠깐이라도 구경을 하기로 했다. 막상 돌다 보니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 볼 만했다.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서윤이가 자꾸 유모차에서 내리겠다고 칭얼거리는 게 조금 힘들긴 했지만 소윤이, 시윤이와 대화를 나누며 걷는 게 재밌었다.


“아빠.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여”

“아이스크림?”

“네. 먹어도 돼여?”

“그래 먹자”


아이스크림 기계에 전용 코인을 넣고 콘을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소프트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지는 게 특이하니까 그거 보고 싶어서 먹자고 하는 거였다. 물론 맨날 한살림의 건강한 쭈쭈바만 먹다가 쾌락적인 맛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엄청 맛있기도 했겠지만.


저녁은 내가 산다고 했더니 아내는 커피까지 사는 거냐고 물었지만, 묻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걸 기정사실로 하는 통보성 발언이었다. 아무튼 이케아에서 나와서 카페에 들러 커피까지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서 나간 지 16시간 만에, 아내는 9시간 만에.


집에 돌아오니 피곤이 몰아쳤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오늘은 아닌 줄 알았는데 갔다 올 때마다 느꼈던 것처럼, 이케아는 사람의 기를 쫘아아아악 빨아들이는 뭔가가 있다. 진짜 스웨덴에 갔다 온 정도의 피로도였다.


“와, 소윤아. 너무 피곤하다”

“아빠. 그러면 우리랑 같이 자면 되겠네여”

“아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너희 재우고 할 일도 있으니까”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아여”

“어젠가 그저께는 뭐 재밌는 거 봤으면서”


소윤이가 자다가 깨서 나왔는데 마침 아내와 내가 예능 프로그램 클립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걸 말하는 거였다.


“그것도 엄마, 아빠의 할 일 중에 하나지”


아내의 답변이 참 궤변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내일이 수요일인 느낌인데 목요일이다. 힘이 난다. 하루를 빨리 사는 느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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