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9(목)
아내는 어제처럼 오전부터 부지런히 살았다고 했다. 오전에 부지런히 각자의 할 일(이지만 함께하는 집안일을 비롯해 공부 등등)을 마치고 집에서 나왔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아직 한참 남은 시간이었으니까 꽤 이른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너무 더우니까 일찍 나왔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오후에는 너무 더워서 나가지 못하니까 오전에 나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말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외출의 열망을 담아 굉장히 성실하게 임했다고 했다.
“여보. 지금도 덥던데”
“그러게. 덥네?”
안타깝게도 오후가 아니었음에도 날씨가 일찍부터 더웠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한참 뒤에, 오후 2시 30분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사진과 함께.
“와, 이렇게 오래 나와 있을 줄이야. 점심 아직도 못 먹음”
맙소사. 그러고 나서도 30분 후에
“우와 이제 귀가. 어리석었다”
라며 카톡이 왔다. 어리석은 건 아니었다. 사진을 보니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리고 한 것 같았다. 탐욕을 향해 몸을 불태우는 불나방은 어리석지만, 육아를 위해 몸을 희생하는 불나방은 숭고한 법이다. 다만, 너무 힘들 뿐.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 4시에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차라리 저녁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더 어울릴 법한 시간이었다. 그에 비해 아내의 저녁 준비는 성대했다. 불고기와 소시지 야채볶음이 주요 반찬이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파서 밥과 김만 있어도 맛있게 먹을 그 시간에 불고기에 소시지라니. 먹기 전부터 맛있었다.
나만 그랬던 것 같다. 다들 점심이 늦어도 너무 늦어서 별로 배가 안 고팠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식사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계속 고민했다. 특히 소윤이의 식사 습관과 태도를 조금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도 이제 일곱 살이 되었으니 웬만하면 대화와 언어의 경고를 통해 고쳐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잘 안됐다. 오늘도 식사가 시작되고 몇 분이나 지나도록 밥숟가락은 한 번도 들지 않고 젓가락으로만 깨작깨작댔다. 조금 더 지켜보려고 하는데,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오이지를 꺼내준다고 했다.
“아, 여보. 오이지 꺼내지 마세요. 그냥 지금 있는 반찬으로만 먹게 두세요”
“아, 네”
이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말했다.
“식사 시작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숟가락 한 번을 안 들고 뭐 하는 거야. 배가 불러서 먹기 싫으면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고 얘기하고 내려가면 되는 거야. 먹겠다고 앉았으면 깨작거리지 말고 열심히 먹는 거고. 알았어?”
잠시 후 소윤이는 눈물을 떨궜다. 소윤이에게 나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소윤이는 그저 오이지를 먹지 못하는 게 속상했을 뿐이다. 이제 소윤이는 아내나 나를 향해 거칠게, 적극적으로 반항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대신 이런 식으로, 자기의 고집이나 불만을 표현하곤 한다. 소윤이하고는 웬만하면 대화로 풀려고 하지만, 오늘은 단호한 행동이 필요할 때라고 판단했다.
“소윤이는 오늘 저녁 굶어”
소윤이의 식판을 치웠다. 소윤이는 식탁에서 내려가 서럽게 울었고. 아내가 조금씩 달래주면서도 다시 한번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일깨워줬다. 소윤이의 서글픔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아마 뭔가 느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저녁을 다 먹고 잠시 쉬고 있다가 갑자기 집 앞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온 가족이. 그때쯤에는 소윤이도 어느 정도 슬픈 기분을 떨쳐냈다. 물론 완전히는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계획에 없던 밤 외출이 생겼으니 계속 슬픔에 잠겨 있기에는 아까웠을 거다.
소윤이는 집 앞 상가 광장에서 시윤이와 함께 신나게 뛰다가 넘어졌다. 오른쪽 무릎이 살짝 까졌다. 소윤이는 당연히 울음을 터뜨렸고.
“소윤아, 많이 아프지? 아이고. 아프겠네. 그래도 피는 안 나. 심하게 다친 거 같지는 않아”
“엉엉엉엉엉엉”
잠시 후에 다시 보니 깊게 패이지는 않았지만 약간 심한 찰과상인 듯, 피가 조금씩 맺혔다. 소윤이는 아파서 그런 건지 슬퍼서 그런 건지 쉽게 기운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속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결국에는 조금씩 기분을 되찾고, 처음처럼 다시 뛰놀기 시작했다.
또 시간이 좀 지나고 아내가 소윤이에게 딸기주스를 권했다.
“소윤아. 소윤이도 마실래? 줄까?”
“여보. 소윤이는 못 마셔요”
훈육의 차원에서 저녁을 굶게 되었기 때문에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이 규칙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지만, 아내가 잠시 깜빡했다. 아마 소윤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잠깐이지만 ‘먹을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가 먹지 못하게 된 슬픔이 컸을 거다. 소윤이는 또 서럽게 울었다. 그래도 금방 또 기운을 차렸다.
생각보다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9시 30분이었다. 머리는 못 감기고 샤워만 해줬다. 아내와 함께 화장실에 들어간 소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상처 난 곳에 물이 닿고 비누가 닿으니 엄청 쓰라렸던 모양이다.
다 씻고 나와서는 알코올로 소독을 하고 상처 밴드를 붙였다. 알코올로 소독할 때도 엄청 울었다. 그건 그냥 진짜 아파서. 오늘 밤, 참 많이도 운다.
다 씻겨서 잘 준비를 모두 마치니 10시 30분이었다.
‘아, 이케아 간 게 그저께였나. 그때처럼 피곤하네’
라고 생각하며 달력을 봤는데 이케아 간 건 어제였다. 맙소사. 이틀 연속으로 이런 피로의 쓰나미라니. 애들 재우러 들어가서 잠들지 않고 나온 아내가 용했다.
오늘은 소윤이 옆에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