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봐도 폭풍성장

21.09.01(수)

by 어깨아빠

어제 막 잠들려고 했는데 서윤이가 갑자기 깨서 엄청 서럽게 울었다. 아내도 나도 수면의 강을 막 건너기 직전이라 바로 반응하지는 못했다. 서럽게 우는 서윤이를 아내와 나 사이에 눕히고 다시 잠을 청했다.


깊은 새벽에도 서윤이가 깨서 갑자기 내 배 위에 누웠다. 잠결에도 내 배 위에 눕는 서윤이를 쓰다듬고 만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면 이런 느낌일까. 서윤이를 볼 때마다 애완견이 생각난다. 서윤이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나와 아내 사이에 누워 있었다.


소윤이는 내가 써 준 편지를 잘 읽었다고 했다. 아직 까막눈인 시윤이는 누가 읽어주기 전이라 무슨 내용인지 알기 전이었고. 소윤이의 목소리가 담담했지만 약간의 기쁨과 설렘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목을 사 둔 건 지난주인데 편지와 함께 주겠다고 이제껏 미루다가 어젯밤에 꺼내 놓았다. 선물은 받았지만 누구하고도 오목을 두지 못할 소윤이의 마음이 상상이 돼서 조금 불쌍했다. 하긴, 시윤이도 좀 불쌍했다. 결국 시윤이를 위한 선물은 아무것도 주지 않고 편지만 써 줬다. 과연 시윤이가 아빠의 편지만으로도 충분히 감동했을지 궁금했다(약간 서운해 하기도 했고 그걸 다소 망나니 같은 행동으로 풀었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지내다가 느지막한 오후쯤 잠깐 장 보러 나갔다 왔다고 했다. 오늘도 낮에는 별다른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서윤이가


“아빠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 물론 이렇게 정확하게는 아니었지만 거의 이런 발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소윤이도, 시윤이도 모두 듣고 깜짝 놀랐다.


“서윤아. 아빠 보고 싶었어?”

“으”

“얼마나 보고 싶었어?”

“마아아아디”


두 번째로 깜짝 놀랐다. 그동안 교육을 좀 시켰다. 얼마나 보고 싶었냐고 묻고, ‘많이’라고 하라고 알려주고. 그 열매가 오늘 처음 나타났다. 서윤이가 새로운 말을 할 때마다 짠 것처럼 아내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서윤이는 밥 먹을 때도 새로운 양상의 행동을 보였다. 데친 오징어를 줬는데 그걸 손으로 집어서 빈 식판에 찍어 먹는 시늉을 했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가 다 초장을 찍어 먹고 있으니 그걸 따라 하는 거였다.


“여보. 얘 왜 이렇게 컸어?”

“그러게. 훅 컸네”


맨날 보고 있는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


저녁 먹고 틈을 봐서 소윤이한테 오목 한 판 두자고 말해 볼까 싶었는데 도무지 기회가 없었다. 저항 요소가 너무 많았다. 일단 이해와 수용이 불가능한 서윤이의 저항이 제일 클 것 같았고, 이해와 수용에 이르기까지 쏟아야 하는 노력이 너무 클 것 같은 시윤이도 있었다. 소윤이를 생각해서 어떻게든 아주 잠깐이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차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서윤이는 자려고 방에 들어갔을 때도 특이한(?) 행동을 했다. 언니와 오빠 사이에 누워서 막 장난을 치길래


“서윤아. 오빠한테 뽀뽀”


이랬더니 흔쾌히 오빠에게 입술을 쭉 내밀었다. 오히려 시윤이가 이불로 입술을 가리며 장난을 치니까 서운해했다.


“서윤아. 언니한테도 뽀뽀”


이랬는데 언니한테는 뽀뽀를 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거나 눈이 마주쳐도 외면했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몇 번을 얘기해도 비슷했다. 소윤이는 서윤이의 웬만한 행동은 다 너그럽게 받아주지만, 이런 건 서운해한다. 서윤이가 자기의 사랑이나 헌신을 받아주지 않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서운함이 폭발한다. 오늘도 소윤이는 계속 입술을 내밀며 뽀뽀를 갈구했는데 서윤이가 끝끝내 외면하자 얼굴에 서운함이 차올랐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아내와 나는 읽을 수 있는 표정의 변화가 있었다. 눈치를 챈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소윤이에게 가서 반강제로 뽀뽀를 시켰다. 그래도 가까이 붙여주니 자기 의지로 입술을 내밀긴 했다. 덕분에 소윤이도 삐지지는 않았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는 낮에 빵을 하나 사러 갔는데, 사장님이 못난이 빵(판매불가)을 하나 더 주셨다며 그걸 꺼냈다. 성경책도 읽겠다고 했다. 식탁을 보니 현대어 번역 성경, 그냥 성경, 다이어리가 나란히 펼쳐져 있다. 아내는 없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의 은신처인 주방 싱크대에 기대고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 아까 빵 먹을 때는 바사사삭 하는 소리에 굉장히 눈에 띄었는데, 성경책 읽는 건 그저 내가 못 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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