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았는데 아내가 병드는 거 아닌가

21.08.31(화)

by 어깨아빠

다행히 몸은 많이 나아졌다. 전날 밤보다는 잠도 훨씬 잘 잤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잠들기 전보다는 개운한 느낌이었다. 나의 바람대로 80%까지는 회복된 듯했다. 혹시 모르니 오늘도 사무실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대고 잠을 보충했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었다(정확히 말하면 끝난 것 같아서). 아내는 카톡으로 나의 몸 상태를 물었다.


“다행이다. 너무 고생했어. 여보”


뭐 사실 고작 하루, 이틀 정도였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내의 찰진 위로 혹은 격려였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마침 그때 대표님이 급여명세서를 보내주셨다. 그대로 아내에게 전달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아내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감사의 카톡을 길게 써서 보내줬다. 아내가 쓴 ‘책임감’, ‘부담감’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멈췄다. 평소에 그런 걸 깊게 안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콕콕 집어서 아는 체 해주니 괜히 시큰해졌다. 남들 다 느끼고 사는 거 애써 생색내면 그것만큼 조잡스러운 게 어딨냐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그걸 알아준다고 생각하니 또 그게 기분이 묘하다.


아내는 오늘 잠시 장모님을 만난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형님(아내 오빠)에게 맡기고 간다고 했다. 장모님이랑 백화점에 가서 뭘 봐야 하는데 애들을 데리고 가면 제대로 보기가 어려우니 그렇게 한다고 했다. 형님도 흔쾌히 ‘혼자 둘’ 상황을 수용했다고 했다. 소윤이, 시윤이 정도면 이제 크게 힘들게 하는 일이 없으니 혼자 둘이라고 해도 괜찮았을 거다. 다만 엄연히 혼자인 것하고는 다르다. 더군다나 형님네가 이사를 가고 나서는 삼촌과 숙모를 보는 빈도가 확 줄어서 꽤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다. 그동안 묵혀둔 삼촌을 향한 여러 요구를 폭발시킬 것이 분명했다.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애들은 엄청 좋았을 게 분명하고. 형님도 좋았을 거다. 오랜만에 조카들과. 물론 임계점을 넘기 전까지는. 아내 말에 의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언제쯤 오냐는 카톡이 왔었다고 했다. 아내가 아이들한테 삼촌이 힘들어하지는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10분만 누워 있겠다는 말을 했다고 했고. 짐작이 간다. 어떤 느낌이었을지. 이골이 난 나나 아내에게도 언제나 고비의 순간이 찾아오니까.


아내는 나보다 먼저 집에 도착하긴 했지만 어제처럼 많이 지친 상태였던 것 같다.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 짧게나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저녁을 기다렸다. 저녁이 다 준비됐다는 말에 다들 식탁에 가서 앉았다.


“이게 서윤이 건가 보네?”

“아니야. 이거 여보 거야”

“아, 오늘 저녁 메뉴가 계란밥이구나?”

“어, 미안”

“뭔소리야. 맛있게 먹으면 되지”


그래. 생각해 보면 애들은 그렇게 계란밥을 주면서 정작 나는 계란밥을 먹지 않았다. 이율배반적인 처사였다. 아내는 참치와 김치를 반찬으로 꺼냈다. 엄마는 장사하러 나가고 없는 집에 혼자 앉아서 차려먹던 시절의 밥상이 생각났다. 어디 가면 일부러 돈 내고 추억 여행도 한다는데 아내 덕분에 잠시나마 추억 여행을 했다. 참치는 우리(아내와 나)만 먹었다. 굳이 애들한테 주고 싶지는 않았다.


밥을 잘 먹는 것 같았던 서윤이가 갑자기 울면서 떼를 썼다. 아내가 삶은 계란을 같이 좀 줬는데 그걸 자기가 통째로 들고 먹겠다는 거였다. 밥은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낮잠을 한 번 잤다고 하는 걸 보니 졸려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서윤이의 울음과 떼는 잦아들 생각이 없었고 식사를 종료했다. 아내는 가뜩이나 없는 식욕이 더 뚝뚝 떨어진다고 했다. 아내는 아무리 짜도 더 이상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수건처럼, 바싹 말라 보였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겨우 회복한 몸뚱아리를 아내를 위해 쓸 시간도 없이 바로 목장 모임을 준비했다. 아빠가 있는 거실로, 아빠가 켠 노트북이 있는 거실로 슬금슬금 나오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다시 호출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이제 그만하고 자자’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소윤아, 시윤아. 얼른 들어가. 이제 엄마 너무 힘드시대”


아내는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나왔다. 중간에 잠깐 깼는데 집에 오는 길에 낮잠을 거하게 잔 시윤이가 아직 깨어 있어서 그거 기다리다가 바로 또 잠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잔 덕분인지 들어가기 전보다는 오히려 생기가 도는 듯했다. 육아가 끝나서 그런 건가.


오늘은 설거지에 빨래까지 쌓여 있지만 일단 해야 할 일이 있다. 소윤이, 시윤이한테 편지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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