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설거지는 할게

21.08.30(월)

by 어깨아빠

간밤에 잠을 하나도 못 잤다. 자려고 누운 이후로 상태가 더 악화됐다. 몸은 몸대로 힘이 없고 정신은 정신대로 오락가락이었다.


‘아, 빨리 좀 푹 자면서 땀을 흘려야 괜찮아질 텐데’

‘출근 시간에는 좀 나아져야 되는데’

‘이제 몇 시간 남은 거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끙끙댔다. 진짜 끙끙댔다.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다행히 마지막에는 자면서 땀을 좀 흘렸다. 그 덕분인지 알람 소리에 깼을 때는 몸이 한 50% 정도 올라온 느낌이었다. 간밤에는 20% 였다. 사무실 근처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오늘은 바로 다시 눈을 붙였다.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지난 밤처럼,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차라리 더 확 아팠으면 조퇴를 하든 뭘 하든 했을 텐데, 그러기에는 또 애매했다. 마트에 가서 1리터 정도 되는 크기의 포카리스웨트를 샀다. 그게 오늘 나의 양식이었다. 점심도 거르고 포카리스웨트만 먹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렇게 안 먹고도 잘 사는데 그동안 탐욕스럽게 참 많이도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증세를 겪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1시간 일찍 퇴근해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증상과 경과, 청진기 진료를 하시더니 ‘장염인 것 같다’라고 하셨다. 원인은 모르지만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나와 함께 수수께기를 푸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약을 처방 받고 나왔다.


아내는 아내대로 바쁜 하루였다. 아내의 일상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남지 않아서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 맞다. 여보 오늘 엄청 바빴구나”


내가 먼저 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집에 오는 길에 죽을 사 왔다. 조금 살 만한 것 같으니 또 탐욕이 고개를 들며 ‘혀를 즐겁게 할 만한’ 무언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밤새 화장실에서 살 지도 모르니 얌전히 죽을 먹었다. 아빠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죽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죽을 좋아한다. 나보다 더 많이 먹었다. 적지 않은 양인데 남김없이 먹었다.


환자인 남편에 가려져서 그렇지 아내도 엄청 피곤해 보였다. 아내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식탁 정리, 애들 씻기는 거, 책 읽어주는 거 등의 남은 일을 혼자 감당했다. 체력은 이미 바닥 났는데 어디선가 대출받은 체력을 쓰는 느낌이었다. 대출의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어주고 잠시 거실에 나온 아내가 말했다.


“아, 엄청 졸았어. 어후 장난 아니다. 너무 졸리다”


내 몸은 한 60% 정도였다. 뭔가 힘겹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겉으로만 보면 오히려 아내가 더 환자처럼 보일 법도 했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고 난 설거지를 했다. 방에서 소리를 들은 아내가 카톡으로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만,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열심히 카톡을 보내던 아내는 곧 잠잠해졌고, 한참 나오지 못했다.


“와 너무 졸리다”


불쌍한 아내는 나오자마자 빨래를 조금 개더니 어느샌가 빨래 개는 걸 멈추고는 벽에 기대고 앉아서 밀린 카톡을 보냈다. 벽에 기대고 앉은 아내의 모습이 약간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부디 오늘 밤이 지나면 적어도 80% 이상으로 회복됐으면 좋겠다. 애들이 자기 전에 기도도 해줬으니까 내일은 괜찮겠지. 회복세니까 괜찮을 거다. 그래야만 한다. 다시 불쌍한 우리 아내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려면. 지사제가 그렇게 비리고 역한 지 몰랐다. 그래도 꾸역꾸역 쭉쭉 빨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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