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9(주일)
소윤이와 시윤이가 토스트를 먹고 싶다고 해서 어제 자기 전에 냉동실에 있던 식빵을 꺼내 놓고 잤다. ‘아이들이 원하는 아침’을 해 준다는 명분 아래에, 너무 대충 아침을 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윤이에게 미안했다. 언니와 오빠는 별미를 먹는다는 즐거움이라도 있지 서윤이는 그냥 맨 밥에 계란 프라이뿐이었다. 그나마도 간장과 참기름이 없는. 뭐 매일 이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항상 잘 먹으니까 덜 미안해하기로 했다.
서윤이는 오랜만에 예배 시간에 잠들지 않았다. 엄청 졸려 보이기는 했는데 잠들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안겨서 곧 잠들 것처럼 손가락을 빨기도 했고,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기도 했다. 아마 아기띠를 했으면 잤을 텐데 허리가 아파서 그냥 그대로 뒀다.
‘점심 편하게 먹을 수 있겠네’
‘아, 그럼 집에 가서 점심을 따로 챙겨줘야겠네’
두 생각이 교차했다. 고민한 건 아니었다. 그냥 상황이 되는 대로 하면 될 일이었다.
점심은 정해져 있었다. 원래 지난주에 소윤이가 가고 싶어 했지만 오늘 가기로 하고 미룬 곳이었다.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려고 했다.
“조금 더 돌면서 재울까?”
“아니야. 그냥 밥 먹이고 재우자”
“그럴까? 잘 먹을까? 졸려서?”
내심 두려웠나 보다. 혹시라도 잠투정과 겹치면 가뜩이나 정신없는 식사 시간이 더더욱 혼란스러워질까 봐. 하긴, 재워도 문제였다. 자고 일어났는데 바로 밥을 대령할 상황이 아니면 그건 감당하기 더 어려웠을 거다. 다행히 서윤이는 양호했다. 물론 양쪽으로 앉은 아이들을 먹이느라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먹었다. 생선구이라 가시 발라준다고 더 정신이 없었다. 애들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퍽퍽 떠먹은 칼칼한 고등어조림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얘들아. 서윤이 이제 잘 거 같아. 그러면 우리 카페에 잠깐 앉았다 가자”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다소 불편하고 정신없는 점심 식사를 자처한 대신 식후 커피의 시간에는 평화를 얻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음료를 한 잔(둘이 한 잔) 사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고 있으니 ‘많이 컸다’는 생각과 ‘아직도 어리고 귀엽네’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서윤이에게는 미안했지만, 서윤이가 깨자마자 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차에 탔다.
집에 가서는 작은방 정리를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받은 헌 옷과 철 지난 옷, 그 외의 각종 잡다구리한 짐이 뒤섞여 들어갈 때마다 마음이 답답한 공간이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던 정리를, 오늘 시작이라도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대 자루와 큰 용량의 쓰레기봉투를 샀다.
막상 집에 도착하니 엄청 피곤했다. 뒷목도 무척 뻐근하고. 아내도 많이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워서 꿈뻑꿈뻑 졸았다. 나도 거실 바닥에 누웠다. 너무 편했다. 까딱하면 잠들었을 텐데 아내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움직여 볼까?”
그렇게 시작한 작은방 정리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구석구석 숨겨진 옷까지 찾아내 분류하고 정리해서 속이 다 시원했다. 황금 같은 주말 오후를 자기들끼리 블록 놀이하면서 시간을 보낸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저녁은 밖에서 사 오기로 했다. 아내도 나도 체력이 소진되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탕수육, 나는 햄버거, 아내는 또띠아.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서 하나씩 찾아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식탁에 앉았는데 엄청 묵직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평소에 느끼는 잔잔한 피로감과는 무게의 깊이가 다른, 약간 견디기 어려운 뻐근함이었다. 얼른 먹고 좀 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햄버거를 다 먹고 난 직후부터 몸이 이상해졌다.
뒷목의 뻐근함을 어쩌지 못해서 소파에 앉아 고개를 뒤로 확 젖히고 있었다. 그것도 성에 안 차서 잠깐 누웠는데 정신이 몽롱했다. 약간 춥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에어컨 때문에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저녁을 먹고 있었고, 저녁을 다 먹고 나서는 잘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소파에 누워 정신을 못 차렸다.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라 뭔가 탈이 났다는 걸, 이때쯤 깨달았다. 소파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에게, 서윤이가 한 번씩 다가와서는
"빠아아아아아. 빠아아아아아"
하면서 뽀뽀를 하고 갔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혹시 모르니 뽀뽀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접촉의 순간에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속이 약간 더부룩하고 설사도 하고 약간 열도 나면서 기운이 없는 게 꼭 체기가 있거나 장염에 걸린 듯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급격히 몸이 안 좋아졌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가 마사지도 해 주고 손도 따 주고 그랬다. 갑자기 환자가 됐다. 피곤이 누적 된 탓인지 뭔가 먹은 게 탈이 난 건지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아팠다. 아내는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했다.
아내가 타 준 따뜻한 매실차, 아내가 데워 준 쌍화탕, 아내가 꺼내 준 타이레놀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