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놀래는 데 진심인 편

21.08.28(토)

by 어깨아빠

아내는 이번 주에도 치과에 가야 했다. 조금 늦게 일어난 덕분에 아침을 먹을 틈도 없이 집에서 나갔다. 치과 진료라고는 하지만 얼굴 전체를 오롯이 의사 선생님에게 보여야 하는 시간인 만큼 머리도 감고 씻고 하려면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오늘도 엄마 따라가서 놀래켜 줄까?”

“네 좋아여”


“오늘은 버스 타고 가자. 아빠 샤워하고 나올 테니까 시간 되면 식탁 좀 치워 주고, 그러고 나서도 시간 되면 너네 옷 좀 갈아입고, 그러고 나서도 시간 되면 서윤이 옷도 좀 갈아입혀 줘”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서윤이 옷 갈아입히는 것만 빼고 다른 건 완벽하게 다 끝난 상태였다.


“우와. 소윤이랑 시윤이 최고네. 짱이야 짱”


집 앞으로 나가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하필 저상버스가 아니었다. 서윤이를 태운 유모차를 들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너무 좁은지 자꾸 걸렸다.


“뒤로 타세요”

“아, 뒤로 타도 되나요? 감사합니다”


뒷문으로 낑낑대며 올라가서 앉았는데 서윤이가 갑자기 막 울었다. 뭐가 무서웠는지 어색했는지. 아기띠를 하고 안아주니까 울음을 뚝 그친 건 물론이고 생글생글 잘 웃기도 했다.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늘도 성공적으로 아내를 놀라게 할 생각을 하며 즐거워졌다.


너무 부지런했나 보다. 대략 아내의 진료 시간을 한 시간 정도라고 보면, 아직 20여 분이나 남았을 때 치과 앞에 도착했다.


“차 저기 있다. 얘들아 얼른 와”


차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너무 더웠다. 시동을 켜고 기다리자니 아내가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다시 내렸다. 치과 주변에 혹시 잠복할 만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여러 바퀴를 돌았다. 전혀 없었다. 날은 덥고.


“저기 카페에 잠깐 들어가자”


치과가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였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일하시는 분이 ‘1인 1주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인데도 1인 1주문을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적어도 절반 이상은 시켜야 한다고 했다. 서윤이는 내가 아기띠로 안고 있었다. 이 녀석도 ‘1인’에 포함되는 거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냥 나왔다.


“소윤아, 시윤아. 일단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먹자”


편의점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골목길 한 편에 서서 먹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소윤아, 시윤아. 이리 와 봐. 여기 서 봐. 사진 찍게”

“왜여?”

“아, 엄마한테 놀이터 나왔다고 사진 보내 드리려고”

“엄마가 우리 온 거 눈치 못 채시게여?”

“어어. 얼른 서 봐”


골목에 있는 화단의 풀이 배경으로 나오도록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서윤아. 너도 눈 감아 봐”


서윤이가 자는 척을 하지는 않았지만 순간포착으로, 자는 것 같은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진 두 장과 함께.


“놀이터 나옴. 서윤이는 잠”


그러고 나서는 너무 더워서 그냥 차에 들어가서 시동을 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한테 걸리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했다. 그때, 아내에게 답장이 왔다.


“으앗. 유모차 안 태우고?”

“태워야지”

“난 이제 끝남. 오늘 임시 치아 하느라 오래 걸렸네”

“그래도 금방 끝났네”


바로 시동을 껐다.


“소윤아, 시윤아. 엄마 이제 곧 나오신대. 숨어 숨어”


서윤이만 빼고, 나와 소윤이, 시윤이 모두 끅끅거리며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아내가 나오는 게 보였다. 더 확실하게 몸을 숨기고 아내가 차에 타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운전석 문을 열고 의자에 앉고 한 3초가 흐를 때까지도 우리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기한 건 서윤이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워”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아내까지 한 1분을 넘게 실컷 웃었다.


“소윤아, 시윤아. 대박. 완전 성공적이지? 아빠가 카톡 보낸 게 진짜 잘 한 거 같아”


너무 뿌듯했다. 혹시 모르는 아내의 일말의 의심을 지우는 결정적인 카톡 아이디어를 떠올린 나 자신이 대견했다.


그 뒤 일정도 지난주와 비슷했다. 지난주에 문 열기 전에 도착해서 가지 못했던 카페를 또 갔다. 아내나 나도 참 대단하다. 커피가 뭐라고. 서윤이가 가는 길에 잠들었길래 아내와 아이들만 가서 커피를 사 오려고 했는데, 도착했더니 서윤이가 깼다.


“그럼 다 갔다 오던지”


모두 내려서 잠시 앉아 있다 오기로 했다. 애들 먹을 빵도 좀 샀다. 마침 아내가 아는 집사님을 만나서 그분이 애들 음료수도 한 잔씩 사 주셨다. 심지어 서윤이가 먹을 빵도 샀다. 서윤이가 자기만 아무것도 안 먹으면서 다른 사람이 먹는 걸 기다려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아 소윤아, 시윤아. 그래도 오늘은 엄마를 너무 완벽하게 놀래켜서 그걸로 다 됐다. 그치?”

“맞아여. 맞아여”


아내는 오후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내만 참여하면 되는 거라(아내가 방해 없이 집중해야 하는 모임이라) 애들은 내가 봐야 했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서 모임을 시작했고 나와 아이들은 거실에 있었다. 나갈 생각이었다. 너무 더운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가고 싶어 했다. 다만, 서윤이가 좀 부담스러웠다. 기왕 나간 거 소윤이, 시윤이와 재밌게 놀아주고 싶었는데 서윤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그게 힘드니까. 그렇다고 낮잠을 또 재우기에는 공백이 너무 짧았다.


거실에서 언니, 오빠와 놀던 서윤이가 갑자기 혼자 바닥에 드러눕더니 손가락을 빨았다. 눈도 약간 졸려 보였고.


“서윤아. 아빠랑 들어가서 잘까?”

“으”

“잘까? 아빠랑 같이 갈 거야?”


서윤이는 몸을 일으키더니 내 손을 잡고 안방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들어가서 진짜 잘 건지, 자더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서윤이 재우고 나올게. 그때 나가자. 알았지?”


서윤이는 잘 것 같기는 했다. 눈이 졸려 보이기는 했는데 바로 잘 거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너무 졸렸다. 휴대폰을 몇 번이나 얼굴 위로 떨어뜨렸다.


‘아, 잠들면 안 되는데. 애들이랑 나가야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잠들었나 보다.


“아빠하. 아빠하”


눈을 떠보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서 시계를 보니 다행히 한 30분 정도 지난 뒤였다.


“아빠하. 잠들었어혀?”

“어어. 나가자 나가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가 너무 안 나오니까 혹시 잠들었나 싶어서 들어와 봤다고 했다.


“고마워.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아빠 계속 잤겠다. 얼른 나가자”


소윤이, 시윤이하고 엄청 재밌게 놀았다. 오랜만에 소윤이 바이킹도 타고, 숨바꼭질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실컷 했다. 이제 그만 놀고 들어가서 밥 먹자는 말에도 조금이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뛰어놀았다. 내가. 불살랐다. 불살랐지만 거뜬히 살아남았고.


“오늘도 여보가 고생 많았네”

“여보. 매주 이러는 거 같은 건 나의 착각이지? 왜 나만 나가는 거 같지?”

“아니, 오늘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농담이야. 오늘은 그래도 여보를 또 한 번 놀라게 한 게 아주 만족스러웠어”


허술해서 온 가족에게 즐거움을 주는 아내와 토요일의 영화를 한 편 시청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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