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06(목)
새벽에 무사히 교회에 다녀와서는 소윤이가 자기 싫다며 버티는 걸 일단 눕히고 출근했다. 8시 30분, 그러니까 소윤이 눕히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소윤이 아직도 안 잠]
20분 뒤 다시 아내의 카톡.
[이제 막 잠]
한 시간 뒤 또 아내의 카톡.
[시윤이 깸]
심지어 덜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기분까지 안 좋다고 했다. 아내가 보내준 동영상 속 시윤이는 주구장창 울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인 건 소윤이가 엄청 오랫동안 자고 일어났다는 정도.
오후에는 은영이(아내의 친구 같은 언니, 단이 엄마) 랑 스타필드에 가기로 했다는 걸, 아침에 소윤이가 듣지 못하도록 굉장히 조심스럽게 얘기해줬다. 소윤이가 들으면 안 되나? 혹시 못 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괜히 소윤이한테 건 수 잡혀서 시달릴까 봐 일단 비밀에 부친 건가? 아무튼 아내의 염려와는 달리 약속은 깨지지 않았다. 엄마 둘에 애 셋. 거기에 애 둘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사내아이. 생각만으로도 벌써 지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가 휴대폰을 집에 두고 가서 퇴근하고 나서야 후기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했다. 밥 먹을 때도 엄청 정신없기는 했지만 아내도 은영이도 '맛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만끽했다고 했다. 평소에 애들이랑 밥 먹으면 맛을 음미하기는커녕 화학적 포만감을 위한 의무적인 식사 행위에 지나지 않을 때도 많다. 오늘은 홀로 둘과 함께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잘' 먹었다고 얘기하는 건, 애들이 제법 협조적이었거나 아니면 아내가 현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만족의 기준을 많이 낮췄거나 그랬을 거다.
아내와 애들은 오후 내내 스타필드에 있다가 내가 퇴근하기 조금 전에 집에 돌아왔다. 퇴근하는 길에 집 앞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잘랐다. 자르는 내내 미친 듯이 졸고, 사장님이 자르다 멈칫멈칫하실 정도로 고갯짓을 심하게 해서 많이 민망했다. 머리 감겨주실 때 짧게 머리 안마(?)를 해주셨는데 황홀했다. "비용은 지불할 테니 한시간만 해주시면 안 되나요?" 라고 말할 뻔했다.
집에 갔더니 아내는 부지런히 저녁을 만들고 있었고, 시윤이는 바삐 움직이며 놀고 있었고, 소윤이는 거실에 주저앉아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소윤이 왜 그래?"
뚱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소윤이를 대신해 아내가 대답했다.
"아, 소윤이 노는 걸 자꾸 시윤이가 방해해서 속상해서 그래요"
얼마나 스트레스받을까. 내가 일기 쓰고 있는데 막 와서 자판 두드리면서 방해하고, 책 좀 읽으려는데 와서 계속 책 덮고 찢고. 그런다고 생각하면 나 같아도 열이 받을 거다. 그래도 요즘은 과장해서 소윤이 편 들어주고 시윤이에게 뭐라고 하듯 몇 마디 하면 금방 풀린다. 대신 그 후로는 철저하게 소윤이의 방패가 되어서 방해를 위해 진군하는 시윤이를 막아내야만 한다. 시윤이의 대성통곡을 감수하고서라도.
"여보는 뭐해?"
"반찬 만들지"
"무슨 반찬?"
"글쎄 나도 정체를 모르겠어"
아내가 저녁 준비를 마치고 애들을 아기의자에 앉혔다. 아내가 만든 건 그저께 가지밥을 만들 때 쓰고 남은 돼지 목살을 다른 야채를 좀 더 넣어서 간장에 살짝 볶아낸 요리였다. 시윤이는 두어 숟가락 먹고는 갑자기 막 짜증 내면서 울고 밥 먹기를 거부했다. 졸려서 그런 건지 아님 엄마가 먹여주기를 바라는 건지 한 번씩 이럴 때가 있다. 아내가 시윤이를 안고 먹이니 조금 더 먹긴 했다.
"엄마, 내 입맛에는 안 맞아"
소윤이는 저 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요즘은 먹기 싫으면 저렇게 말한다. 오늘도 고기반찬을 조금 먹더니 저 말을 했다. 아내가 식탁에 앉아서 애들을 맡는 동안 나도 아내가 쪄 놓은 고구마랑 달걀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싱크대 앞, 그러니까 ㄷ자형 주방의 안쪽, 쭈그려 앉으면 아일랜드 식탁에 가려서 나도 그들을 볼 수 없고 그들도 나를 볼 수 없는 그 공간에 숨어 앉았다.
"여보, 여기 앉아서 먹어"
"응, 쉬는 거야"
고립이 곧 쉼이다.
애들 재우고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이거(고기반찬) 맛있지 않았어?"
"음, 뭐, 괜찮았는데, 뭐랄까, 왠지 잡채에 들어간 고기 느낌이었어"
"별로였어?"
"아니, 뭐, 괜찮았는데, 소윤이는 확실히 굽거나 튀긴 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건 고기가 너무 뻑뻑하다고 해야 하나"
"목살이니까 뻑뻑하지"
부위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엄마도 가끔 미역국에 닭가슴살을 넣곤 했다. 건강에 좋고 살이 안 찐다는 이유로.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역시 미역국에는 닭보다는 소가 어울리지 않나 하는 마음은 늘 있었다. 오늘 아내의 반찬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애들 몸에는 더 좋을 조리 방법이었고 맛이었는데, 너무 못된 구석이 없는 요리였다고나 할까. 난 반찬투정 절대 안 한다. 오늘은 아내가 물어봐서 최대한 돌려 돌려 말한 거다.
여보, 난 맛있었어. 소윤이가 그랬을 거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