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할 수 없는 허망함

18.09.07(금)

by 어깨아빠

애들도 5일째 쯤 되니 피곤한지 새벽에 활력을 찾는 시간은 늦어지고 집에 돌아와 다시 잠드는 건 순식간이다. 평소에 믹스커피는 거의 먹는 일이 없지만 이번 주 아침에는 오늘을 포함해 두어 번 마셨다. 다 자고 혼자 거실에 남아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기 전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이런 시간에는 왠지 믹스커피가 당기기는커녕. 당이 필요했다. 너무너무 피곤하니까. 핫식스도 꼬박꼬박 사서 마시고 있다. 내일이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


소윤이 시윤이는 푹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아내가 문제였다. 비염도 심해지고 머리도 아프고. 이럴 때 두어 시간 푹 자고 일어나면 한결 나아질 텐데 두 시간은커녕 2분도 누워있거나 눈 감고 있는 꼴을 용납치 않는 두 녀석과 함께하는 게 현실이다.


"여보,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자"

"그래"


아내는 도저히 저녁준비를 할 수가 없다며 밖에서 먹자고 했다. 본격적으로 아파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니지만 만사가 귀찮고 그냥 드러눕고 싶은 몸과 마음이랄까. 어차피 새벽기도 기간이라 금요철야예배도 없어서 시간의 여유도 충분했다.


퇴근할 무렵 아내와 아이들은 놀이터에 있었다. 주차하고 바로 놀이터에 갔는데 소윤이는 어린이집 다닐 때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여전히 까칠한 소윤이. 놀이터에서도 도도한 학 한마리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함께 놀다가 미끄럼틀에서 뒤엉켜 내려오면 다른 남자 아이들은 막 깔깔거리며 웃는데 소윤이는 그게 불쾌한 모양이다.


"소윤아 원래 놀이터에서는 다 그렇게 노는거야, 혼자 노는 게 아니잖아"


라고 말해줘도 별로 납득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눈치다. 시윤이는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그물 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나름의 익스트림을 즐기고 있었다.


"아빠, 이것 좀 보세여, 나 이제 이거 잘하지여?"


끊임없이 아빠를 불러대며 자기가 하는 걸 보라는 소윤이에게 큰 관심과 반응도 해줘야 하고, 혼자 두면 어딘가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시윤이도 항상 예의주시해야 하고. 그나마 아내가 있으니 한 명씩 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내가 낮에 둘 데리고 놀에터에 다녀오면 왜 그리도 힘들어 하는지 알 것 같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동시에 이뤄져야만 하는 곳이다. 한참을 더 놀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소윤이가 거들었다.


"우리 짜장면 먹자여, 짜장면"


짜장면 먹고 싶대서 가면 막상 잘 먹지도 않는다. 내 생각에 소윤이는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탕수육이 먹고 싶었거나 아니면 소윤이한테도 만만한 게 중국요리라 그랬나. 아무튼 소윤이의 의견은 묵살했다. 예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백반집에 가보기로 했다. 나름 정갈하고 깔끔해 보이는 외관에 몇 개 없었지만 평도 괜찮았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나름 기대감을 안고 들어갔다. 그냥 그랬다. 별로였다. 대신 백반집이니만큼 애들 밥 먹이기에는 아주 좋았다. 여러 밑반찬도 있고 생선도 있고. 영양학적으로는 아마 백반집에서 먹이는 게 집에서 먹이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성하지 않을까 싶다.


밥 먹고 나서는 카페에 갔다. 밤공기가 선선하니 밖에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침 매장 안에 손님들도 꽤 있어서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 앞 쪽에 나무 데크가 꽤 널찍하게 있었다. 역시나 소윤이랑 시윤이는 잠깐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계속 돌아다니고 소리 지르고. 불타는 금요일이라 주변 식당에 사람도 많고 분위기도 북적북적해서 애들이 좀 소란을 피워도 상관없었다.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물론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은 없었다. 내내 두 녀석들 쫓아다니면서 놀아주느라 정신 없었지만, 쫓아다니며 막는거랑 놀아주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통제할 일이 없으면 그다지 고되지도 않다. 강시윤이 자꾸 옆 건물 주차장 입구 쪽으로 돌진하는 걸 막는 게 제일 성가셨다. 애들 상태로만 보면 한참 더 놀 수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퇴근이 필요했다. 특히 아내는 전체적인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씻기고 잘 준비를 마쳤다. 망했다. 아내와 나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애들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렸다. 정확히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2시간은 잔 것 같다. 이 허망한 심정은

겪어도 겪어도 적응이 안되는구나. 아내도 잠깐 거실에 나왔다가 먼저 자러 들어갔다. 내일은 새벽에 드럼도 쳐야 하고 신림동에도 가야 하고 야구장에도 가야 해서 좀 일찍 자고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밀린 일기랑 글도 써야 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1시가 넘어서 누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망했다. 허망함의 또 다른 이름은 망함이던가. 그나마 내일 주말이니까 어떻게든 새벽시간만 이겨내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위안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