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치킨이 아니라 순삭 치킨

22.03.12(토)

by 어깨아빠

요즘 소윤이는 종종 동생들의 아침을 책임진다. 아내나 내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먼저 나서서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봤는데 ‘맏이의 책임감’, ‘맏언니의 부담’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 너무 즐거워하고 자주 하고 싶어 한다. 물론 온전히 ‘동생을 섬기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뭔가 ‘내가 대장’이 되어서 동생들을 이끄는 느낌도 좋고, 엄마와 아빠의 영역인 ‘요리(주먹밥을 요리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만)’의 영역에 발을 담그는 것도 좋은 듯하고. 거창한 건 아니다. 대부분 주먹밥이다. 밥을 큰 그릇에 담고 맛을 내는 가루나 김을 넣어서 섞는다. 그러고 나서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적절하게 나눠 주면 끝이다.


오늘 아침에도 소윤이는 아직 잠에 취한 나와 아내에게 와서


“엄마. 오늘 제가 주먹밥 하면 안 돼여?”

“어? 주먹밥? 밥솥이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데”

“제가 옮길게여”


내가 끼어들었다.


“소윤아. 안 돼. 그거 무거워. 위험해”

“아빠. 그러면 아빠가 밥솥만 옮겨 주면 안 돼여?”

“옮겨 달라고?”

“네”


그거 옮기는 데 30초 아니 15초도 안 걸릴 거다. 그 쉬운 일을 잠에 취해서 그 뒤로 한참 동안이나 안 해 줬다. 소윤이도 두어 번 더 물어보더니 포기했는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결국 느지막하게 나가서 그릇에 밥을 떠 주고 소윤이에게 넘겨 줬다. 소윤이는 오늘도 매우 뿌듯하게 동생들을 챙기며 주먹밥 대장이 되었다.


지난 수요일에 자연드림에 장을 보러 갔을 때 치킨을 예약하고 왔다. 항상 치킨을 파는 게 아니라 이따금씩 예약을 받고 파는데 다소 충동적으로 예약을 하고 왔다. 애매하게 4시에 찾겠다고 했다. 저녁에 개강 예배가 있으니 그전에 좀 일찍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사실 충동적으로 예약한 거라 시간도 막 정했을 거다.


막상 그 시간에 찾으러 가려고 하니 너무 어중간했다. 전화를 해서 혹시 더 일찍 찾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된다고 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예배를 드리자마자 바로 아이들 옷을 입혀서 나왔다. 자연드림에 가서 치킨도 찾고 간 김에 장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도 들르고. 치킨을 빨리 찾아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침 돌아오는 길에 서윤이도 잠들었다. 요즘은 방에 눕히면 깰 때가 많은데 오늘은 깨지도 않았다.


“와, 엄청 한가롭다”


서윤이가 부재할 때 항상 나오는 감탄이다. 아내와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치킨은 순살이었고 한 마리였다. 아내와 나도 입을 더하기에는 미천한 양이었다. 치킨은 세 남매에게 양보하고 아내와 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뼈 있는 치킨을 먹을 때보다 더 많이 먹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루미큐브를 했다. 이것도 지난번에 K네 가족이 왔을 때 K의 첫째가 할 줄 안다고 해서 처음 하게 됐다. 소윤이가 그렇게 ‘저것 좀 해 보고 싶다’고 얘기할 때는 ‘기약 없는 나중’을 운운하며 미뤘는데. 딸아, 아들아. 이 게으른 아빠를 용서하거라.


잠에서 깬 서윤이도 나와서 치킨을 먹었다. 아주 많이 먹었다고 했다. 난 애들이랑 루미큐브를 하느라 신경을 못 썼다. 식사를 마친 서윤이가 지상으로 내려왔고 급히 다른 보드게임을 주며 루미큐브를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다른 보드게임도 비슷하지만 루미큐브는 특히 서윤이의 방해가 용이한 게임이다.


저녁에는 온라인으로 처치홈스쿨 개강 예배를 드렸다. 그전에 아이들 저녁도 먹이고 씻기는 것도 마쳤다. 예배가 끝나면 바로 잘 수 있도록. 시윤이는 예배드릴 때, 이미 너무 졸려서 정신을 못 차렸다.


아내와 나는 저녁을 거른 대신 치킨을 시켰다. 공교롭게도(?) 공짜 쿠폰이 생겼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와 전투적으로 치킨을 뜯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영화도 한 편 볼까 했는데 아내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치킨 먹고 나서 아내에게 치워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그걸 치우는 것을 시작으로 주방에서 한참 동안 계속 움직이며 정리를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움직일 줄은 몰랐다. 조금 미안했다. 아내의 시동 버튼을 내가 누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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