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해 주는 밥 먹고 싶은 날

22.03.21(월)

by 어깨아빠

아내가 퇴근 무렵에 연락을 해서 ‘오늘은 외식을 해야겠다’고 얘기했다. 쌀이 다 떨어져서 진작에 나가 장도 보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그제서야 나가서 장을 보고 밥을 할 생각을 하니 너무 지친다면서. ‘진작에’ 나가지 못한 이유가 중요하다. 대략 짐작을 했다.


“오후에 많이 힘들었구나?”


우리 가족 모두 좋아하는 돈까스 가게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난 퇴근하고 바로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차가 안 막혔다. 집까지 한 10분 정도 남았을 때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내도 막 차에 탔다고 해서 그냥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들 기분이 좋았지만 서윤이가 특히 최상이었다. 낮잠을 아주 개운하게 잘 잤는지 뭔가 맑고 투명하고 쾌활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에 비하면 많이 피곤해 보였다. 기분이나 피로도와는 상관없이 돈까스는 다들 잘 먹었다.


“아빠아. 동까쯔 또 주질 주 있나여어?”


서윤이는 잘라 놓기가 무섭게 집어먹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언제나처럼 많이 먹었다. 소윤이는 양이 좀 줄었는지 음식의 맛과 상관없이 엄청 조금 먹을 때가 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내가 샐러드에 얼마나 손을 자주 뻗고 많이 먹는지를 보면 그날 아이들의 먹성을 가늠할 수 있다. 오늘은 샐러드를 다 먹었다. 사실 점심에도 돈까스를 먹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돈까스를 먹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음식을 정할 때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를 완전하게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산다.


돌아오는 길에 자연드림에 들러서 장도 보고 문구점에도 들렀다. 장을 볼 때는 아내만 내렸고 문구점에서는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만 내렸다. 서윤이도 처음에는 자기도 같이 내리겠다면서 울려고 하다가


“서윤아. 서윤이 아빠 좋아하잖아. 아빠랑 같이 놀자”


라는 나의 말에 금세 기분을 풀었다. 손잡아 달라고 하면 잡아 주고 삐진 척하면 다 받아 주고 그랬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서윤이가 그랬다. 확실히 소윤이의 ‘순한 맛’ 느낌이라는 걸 자주 느낀다. 소윤이는 에누리가 없었다. 완전히 군림했다. 소윤이가 여왕이었다면 서윤이는 공주랄까.


아내는 내일부터 처치홈스쿨 모임을 시작한다. 코로나가 사태가 심화된 이후로 거의 2년 넘게 모이지 못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모임을 가지긴 했지만 모두 모이는 건 19년 2학기 이후로 처음이다.


“모이고 싶은데 떨리네”


아내의 표현이다. 같이 모여야만 얻는 유익도 있고 오랫동안 모이지 못했으니 그 자체를 향한 그리움도 있다. 한편으로는 모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들고 고생해야 하는지 아니까 무섭기도 하고. 출산을 경험했던 엄마들이 다시 출산을 기다리는 게 이런 심정일까. 아내는 오늘도 아이들을 재우고 할 일이 많았다. 짐도 챙겨야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애석하게도 아내는 다른 날보다 더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깼다. 요즘 아내의 미모가 깊어지나. 자꾸 ‘잠자는 방 안의 공주’가 되어가네.


나도 너무 오랜만이라 뭘 도와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사실상 없었다. 아직은. 대신 설거지를 하고 빨래와 관련된 일련의 일을 맡았다. 자정이 넘어서 1시가 될 때까지 했는데, 아내는 여전히 한창이었다. 오랜만에 아내보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누웠다. 아내는 얼른 마치고 자겠다고 했지만 아내가 말해 준 ‘남은 해야 할 일’을 보니 그러기 어려워 보였다.


코로나가 끝나긴 끝나는 건가. 기나긴 ‘오로지 홈스쿨’의 시간도 끝나가는 걸 보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