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축구장

22.03.20(주일)

by 어깨아빠

기껏 지난주 한 번 따로따로(나와 시윤이와 서윤이는 집에서, 아내와 소윤이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건데 다 함께 교회에 가는 게 엄청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요즘 교회에 가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어린이 예배에 보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시윤이는 2층, 소윤이는 3층으로 가는데 2층에서 시윤이를 보내는 동안 소윤이도 빠르게 인사를 하고 3층으로 올라간다. 사실 이제 시윤이도 얼마든지 알아서 갈 수 있고 종종 그러기도 한다. 굳이 세세한 인사를 나누지 않고 후다닥 올라가는 소윤이를 보면 특히 아쉽다. 이게 웬 유난인가 싶기도 하지만 뭐 어쩌나. 다 큰 거 같고 동생도 두 명이나 있어서 잊고 사는 듯 보이지만, 나의 첫 딸은 소윤이인 걸. 동생이 있어도 여전히 어려 보이기만 하는 시윤이가 조금 더 커도 비슷하겠지.


서윤이는 예배가 거의 끝날 때쯤 잠들었다. 그전까지는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청 시끄럽게 하지는 않아서 예의주시해야 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예배가 끝나고 차에 태웠을 때도 여전히 잘 잤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가 먼저 내려서 식당으로 들어갔고 나는 서윤이와 함께 차에서 기다렸다. 너무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밥 대신 짜증 세례를 먹을지도 모르니까. 아내가 음식이 나왔다며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도 서윤이는 깨지 않았다. 식당으로 안고 들어갔더니 그때 깼다. 다행히 기분은 좋았는지 특유의 부스스한 표정으로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언니와 오빠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각종 보드게임과 오목을 했다. 그 사이 아내가 ‘서윤이가 또 졸린가’라고 얘기하면서 서윤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서윤이도 ‘엄마랑 방에 들어가서 잘까’라는 물음에 그러겠다고 대답하긴 했다. 내가 보기에도 서윤이가 졸려 보이긴 했지만 또 잘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낮잠을 한 번 잤으니까. 서윤이가 낮잠을 두 번이나 자는 일은, 서윤이가 직립 보행을 시작한 후로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잠시 후 서윤이가 아내를 재우고 나왔다.


“서윤아. 엄마는?”

“엄마 꼬 다여”


방 문을 잠그고 아내의 낮잠을 지켜줬다. 소윤이, 시윤이하고는 여전히 보드게임과 오목을 했다. 서윤이의 방해 아닌 방해가 있기는 했지만 서윤이를 너무 서운하게만 하지 않으면 서윤이도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윤이와 시윤이를 오랜만에 축구장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막상 아침에 나가 보니 생각보다 쌀쌀하길래 다시 생각을 바꿨다. 이미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어제 ‘내일은 아빠랑 축구장에 갈래?’라고 얘기를 꺼냈기 때문에 다시 거두려면 설득이 필요했다. 소윤이는 아침까지만 해도 ‘갈지 말지 고민을 해 보겠다’면서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더니, 막상 ‘오늘은 못 갈 것 같고 다음 주에 가자’라고 하니까 가고 싶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생각보다’ 추운 거지 ‘진짜’ 추운 건 아니었다. 기온도 영상이었고.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제 문제는 서윤이였다. 언니와 오빠가 현관에 나가서 신발을 신지 않아도, 이미 그전에 오고 가는 대화만 듣고도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큰 서윤이의 서운함도 달래야 했다. 역시나 서윤이는 아빠와 언니, 오빠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더니


“아빠아. 우이 어디가여어?”


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서윤아. 서윤이는 안 가고 언니랑 오빠만 갈 거야”

“아니에여어. 떠니도 가 꺼에여어”


서윤이는 마치 ‘아빠 장난치지 마세요. 저도 데리고 가는 거 다 알아여’라는 식으로 자기 나름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옷은 혼자 못 입으니까 내복 차림으로 현관에 가서 신발을 신었다.


“서윤아. 엄마랑 집에 있어. 알았지?”

“떠니도 가구 딮은데엥”


나, 아내, 소윤이, 시윤이 모두 같은 표정(애정을 가득 머금은 채로 약간 얼굴을 찡그리면서)으로 서윤이를 봤다가 서로의 얼굴을 봤다. 서윤이는 이런 대우를 자주 받는다. 초특급 막내 대우. 숨만 쉬어도 칭찬받는다는 게 딱 서윤이의 삶이다. 서윤이는 아빠와 언니, 오빠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남아 있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날이 춥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수시로 물어봤는데 오히려 덥다고 했다. 아이는 소윤이와 시윤이 둘뿐이었는데 둘이서도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잘 놀았다. 요즘 시국에는 사람 없는 야외가 최고의 장소다.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저녁을 미리 먹였다고 했다. 왠지 엄청 반가운 얘기였다. 뭔가 큰 숙제를 누가 대신 해 준 느낌이랄까. 게다가 저녁 반찬이 생선이었다. 아내도 그래서 미리 먹였다고 했다. 아무튼 덕분에 나머지 세 식구의 저녁 식사가 다소 여유로웠다.


아내는 오랜만에 ‘자녀 한 명’과 보낼 때의 피로감을 느꼈다고 했다. 계속 붙어 있어야 하고 놀아줘야 하는, 자녀가 하나였던 때가 너무 오래된 아내에게는 경험했지만 새로운 기억이었다. 새삼 소윤이와 시윤이가 평소에 존재만으로도 아내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느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아내 생각은 전혀 다를지도 모르지만.


오늘 밤에는 세 녀석이 모두 자다 깨서 나왔다. 그것도 동시에. 뭔가 기분이 좋았다. 물론 아내와 내가 뭔가 다른 걸 하려고 하던 차에 그랬으면 기분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오늘은 아내와 나도 막 자러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매일 방을 탈출하는 엄마와 아빠 덕분에 다 함께 누워서 잠드는 일은 굉장히 드문데, 오랜만에 모두 누워서 약간의 담소와 함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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