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집을 나갔다

22.04.19(화)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무척 바쁜 날이었다.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었고 오늘은 오후 늦게까지 있다가 왔다. 아침에 집에서 나가기 전에 아침 먹이고 준비하는 것부터 바쁘고, 처치홈스쿨에 가서도 바쁘고, 갔다 와서 저녁 준비하는 것도 바쁘다. 언제나 바쁘지만 유독 더 바쁜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서윤이가 현관 밖까지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맞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이제 소윤이와 시윤이는 안아 주지 못하고 선 채로 포옹하고 뽀뽀를 한다. 크게 호흡 한 번 하면 안아 주는 것도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이제 쉽게 엄두를 낼 만한 몸무게가 아니다. 서윤이만 번쩍 안아서 들어 올리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린다. 사실 서윤이도 가볍지는 않다.


“흐이짜”


이런 소리가 자연스레 새어 나온다.


아내는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작 아내하고는 제대로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다. 같은 운수 회사의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들이 서로 마주쳤을 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지나쳐 가는 것처럼


“여보”

“어, 여보”


하며 눈을 맞추고 각자의 역할에 다시 몰입한다.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는 주부로, 나는 아이들을 책임지는 아빠로. 저녁 준비가 끝나고 다 함께 식탁에 앉을 때나 되어서야, 한숨 돌리고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보통 내가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치고 소윤이나 시윤이, 그다음 서윤이 순으로 식사를 끝낸다. 먼저 식사를 끝내는 소윤이나 시윤이를 내가 씻기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냥 소파에 앉아 있었다. 피곤해서 약간 귀찮기도 했고, 아이들에게도 아주 짧게나마 여유를 주고 싶기도 했다. 아내가 해야 할 일이 조금 늘어나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아내는 오늘은 ‘정말’ 커피가 간절했는데 마시지 못했다면서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기 전에 커피를 주문했다. 아내에게 커피는 언제나 간절하지만, 오늘처럼 표현하는 날은 진짜 카페인의 목 넘김을 느끼고 싶은 날일 테다. 다른 날은 약간 습관에 가까운 욕구일 때도 많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고, 난 목장 모임을 하는데 커피 배달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여보. 커피 배달했어?”


방 안에 있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응. 40분 전에 왔대”


얼른 현관을 열고 커피를 가지고 들어와서 냉장고에 넣었다. 목장 모임을 마치고 나에게 남은 할 일을 한 뒤 소파에 앉으며 커피를 꺼냈다. 아내는 그 후로도 한참 소식이 없었다. 잠드는 거야 매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꽤 늦게까지 나오지 못했다. 시켜 놓은 커피도 있었고, 더 자다가 깨면 아내의 허망함이 너무 커질 것 같아서 방 안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깊이 자지는 않을 테니 진동을 느끼고 깨라는 의도였다. 다행히 아내는 나의 전화에 잠에서 깼는지 곧 거실로 나왔다.


인생의 잔뼈가 굵은 50대 회사원처럼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내는 피곤과 잠을 떨쳐 내기 위해 꽤 한참 동안 시간을 썼다. 그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와 이야기도 하고 이것저것 사부작거리기 시작했을 때,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00한테 연락 왔었네. 에그타르트를 받았는데 내 생각이 났다면서. 지금 만날 수 있냐는데?”

“아, 진짜?”

“어. 00 집으로 올 수 있냐고. 진짜 갈까?”

“그래. 가”

“여보는 괜찮아?”

“나? 어 당연히 괜찮지”


아내는 11시 30분이 다 돼서 집을 나갔다. 엄청 늦게 돌아올 것 같았다. 차 타고 5분 정도의 거리의 가까운 곳이긴 했지만, 워낙 야심한 시간이니 주차하고 내려서 움직일 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은 됐다.


“여보. 가서 그냥 집 앞에 주차하고, 돌아왔을 때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지 말고 그냥 지상에 대”


일탈을 만들래야 만들 수 없는 삶을 사는 아내에게, 이런 좋은 일탈(?)의 기회가 생긴 게 내가 다 반가웠다.


다행히 서윤이가 중간에 깨서 나오지는 않았다. 이런 날은 희한하게 안 깨고 잔다. 고마운 일이다. 나도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소윤이는 매트리스, 시윤이와 서윤이는 원래 자기 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소윤이 옆에 눕고 싶었는데 소윤이의 누운 자세가 애매했다. 어쩔 수 없이 시윤이와 서윤이 사이에 누웠다. 여전히 소윤이 옆에 눕고 싶은 마음이 크긴 했지만, 막상 서윤이와 시윤이의 손을 다 잡고 누우니, 늘 그랬던 것처럼 그것도 기분이 역시나 좋았다.


아내에게, 혹시 무슨 일을 벌이려는 자가 나타나면 절대 끌려가지 말고 무조건 소리 지르면서 난동을 피워야 한다는 말을 해줬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