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0(수)
자다가 깨서 아내가 있는지 확인했는데, 아내는 소윤이 옆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 보니 거실이 무척 깨끗했다. 3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온 아내가 그 시간에도 뭔가 집을 정리하고 잤다는 게 느껴졌다. 식탁에는 짧은 쪽지와 함께 홍삼 스틱 하나가 놓여 있었다. 쪽지의 내용은 언제나처럼 출근하는 남편을 향한 응원과 격려였다.
그나저나 아내가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정을 봐 주지 않고 평소처럼 일찍 일어날 텐데 아내가 피곤해서 어떻게 버틸까 싶었다. 그나마 오늘은 아무 일정이 없어서 집에만 있으면 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졸릴 때도 많다.
그냥 일찍 일어나도 피곤할 텐데,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만든다. 아내는 눈을 뜨자마자 시윤이와 서윤이를 불러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시윤이가 정성스럽게 갠 빨래를 서윤이가 난장판을 만들었고, 거기에 분노한 시윤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서윤이의 참견을 막았다. 서윤이는 이런 오빠의 행태에 울음으로 응수했고. 시윤이와 아주 긴 훈육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서윤이에게도 사과를 시키려고 서윤이를 방으로 불렀는데, 서윤이는 들어오자마자
“오빠. 내가 망가뜨려더 미아내에에”
라고 얘기하며 시윤이에게 사과를 했다고 했다. 아내가 시키기도 전에.
“진짜 여우다 여우”
타고났다. 언니의 탁월한 정보 수집력과 기민함에 막내의 처세까지 더해져서 상황 파악에 따른 처신을 아주 잘 한다.
점심 무렵에는 아내의 목장 집사님께서 집에 오신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그 시간도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꾸 다투고 서윤이는 울고. 원래 처음에는 오랜만에 교회에서 보자고 하셨는데 아내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갈 엄두도 안 나고, 가도 제대로 모임을 갖기 어려울 것 같아서 집으로 오시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한 거였다. 그나마 집이었으니까 그 정도였을 거다. 교회에 다녀왔으면 두세 배는 더 힘들었지도 모른다.
오후에는 형님(아내 오빠)네를 만난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형님네를 만났다. 아내는 이 카페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전에 종종 가던, 정원이 넓은 카페였다. 사장님도 바뀌고, 가게 이름도 바뀌고, 마당도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훨씬 좋게 바뀌었다면서 ‘너무 좋았다’는 말을 계속했다. 장소도 그렇게 좋은데 심지어 커피와 디저트까지 맛있었다면서.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무척 잘 놀았다고 했다.
퇴근해서 집에 가고 있을 무렵, 아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며 연락이 왔다. 저녁은 우동을 먹을 거라고 했다. 난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축구를 하러 가야 했다. 시간의 여유가 약간은 있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난 축구를 하러 갈 때는 밥을 안 먹는다) 난 집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면 나가기로 했다. 내가 나가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이 도착하면 얼굴을 보는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지금 어디쯤이야?”
“나 지금 제2자유로 탔어”
“아, 그럼 여보도 우동 가게로 올래?”
“아, 나? 왜?”
“여보도 여기 와서 있다가 같이 집에 가자고”
“아,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내가 너무 힘들 거 같아서”
“아, 알았어. 그렇게 하자”
우동 가게 앞을 지나치면서 봤더니 아직 아내의 차가 없었다. 곧장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서 다시 나왔다. 막 음식이 나왔을 때 식당에 도착했다. 서윤이는 아기 의자에 앉아서 세상을 다 비출 만큼 환한 미소로 나를 반가워했다. 아내는 돈까스를 자르면서 엄청 낑낑대고 있었다.
“여보. 내가 할까?”
“그래. 여보가 아예 이쪽으로 와”
그대로 투입됐다. 어차피 나는 안 먹으니까 아이들 챙기는 데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윤이가 어딘가 이상했다. 뭔가 낯빛이 어두웠다. 기분이 안 좋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불편한 데가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다 아니라고 했다. 그냥 좀 많이 졸리고 피곤하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 그저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평소와 다를 모습이었다. 미심쩍긴 했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까 ‘좀 많이 피곤한가 보네’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소윤이는 몇 젓가락 뜨지도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역시 원인은 따로 있었다. 멀미였다. 식당까지 오는 동안 멀미를 좀 했는지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바로 토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소윤이는 더 먹지 못하고 그대로 식탁 위에 엎드렸다. 그 상태로 살짝 졸기도 했다. 피곤해서 멀미를 한 건지 멀미를 해서 더 피곤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쓰러웠다.
시윤이와 서윤이라도 맛있게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시윤이는 다 먹고 나서도 ‘더 먹을 게 없냐’고 말을 하며 ‘아직 배가 덜 찼다’고 했다. 서윤이도 끝까지 돈까스를 더 달라고 했다.
“서윤아. 이제 없어. 우리 다 먹었어”
소윤이는 아내와 화장실에 한 번 다녀왔다. 약간 토할 것 같다고 해서 갔는데 토하지는 않고 돌아왔다. 아내와 나는 각자 차를 타고 움직여야 했다. 집까지는 5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울렁거림이 더 심해질지도 모르니 소윤이에게 비닐봉지를 하나 줬다.
“소윤아. 혹시 가면서 토할 것 같으면 여기 잘 잡고 해”
소윤이는 집에 도착했을 때는 괜찮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까지 올라가는 사이에 토했다. 그 봉지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완전히 다 토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속은 좀 편해졌다고 했다. 비위 약한 아내는 소윤이의 토사물이 담긴 봉지를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버리고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누가 보면 아내가 토하느라 고생한 줄 알았을 거다. 꽂혔을 때는 ‘토’의 ㅌ 만 상상해도 꾸엑 하기도 하는 게 아내다.
난 바로 다시 집에서 나왔다. 다행히 소윤이는 그 뒤로는 멀쩡해졌다고 했다. 멀미 기운이 심해서 그랬나 보다. 다행이었다. 축구를 하고 돌아왔을 때 아내는 식탁에 앉아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처치홈스쿨에 가면 선생님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아내는 밤마다 열심히 영어 연습을 한다. 뭐 대단한 회화나 수준 높은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피곤하고 귀찮을 시간에 매번 열심히 연습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연습에 마지막 남은 의지와 열정을 갈아 넣었는지, 아내는 그 뒤로는 내일을 위해 꼭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꾸역꾸역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