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8(월)
알람이 울리기 전인데 잠에서 깼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는데, 30분 전이었다. 일찍 일어날까 고민했지만, 다시 잠들지 못하더라도 누워 있기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시윤이가 매트리스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아내 옆으로 움직였다. 시윤이의 움직임에서 ‘다시 잠들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느껴졌다. 난 약간 반 수면 상태로 30분을 보냈고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빠하. 안녀허엉”
“어, 시윤아. 잘 잤어? 아빠 갈게”
문을 닫고 나왔는데 곧바로 시윤이도 따라 나왔다.
“시윤아. 왜?”
“쉬 마려워서여”
“아, 그래”
화장실에서 나온 시윤이에게 뽀뽀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여보냈다. 얼른 다시 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안 잘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윤이는 그때 깨서 계속 안 잤다고 했다. 아침에 아내와 아이들과 통화를 했다. 소윤이가 나에게 얘기했다.
“아빠. 오늘 아침에 시윤이 만났다면서여”
“어, 시윤이가 그 시간에 일어났더라”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빠가 엄청 보고싶었어여”
“아, 그랬어?”
소윤이의 목소리에 아빠를 만난 시윤이를 향한 부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시윤이는 서윤이와 함께 낮잠을 잤다고 했다. ‘워낙 이른 시간에 일어났으니 많이 피곤해서 순순히 낮잠을 잤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내의 상황을 모르고 하는 1차원의 발상이다. 시윤이와의 ‘깊고 진한’ 시간을 여러 번 보냈다고 했다. 낮잠이라도 재워서 피곤함의 수치를 좀 떨어뜨려야 그나마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중간에는 나에게 전화도 했다.
“여보. 시윤이가 밥을 열심히 안 먹어서 밥을 못 먹게 됐는데, 저렇게 계속 울고 짜증을 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 그러게. 음…”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문이 막혔다. 갑작스럽지 않았더라도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자녀와의 시간이나 관계에, 명쾌하고 칼같이 날카로운 정답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내에게 뭐라고 얘기는 했지만, 뻔한 얘기였다. 아내가 모르는 내용도 아니었고. 아무튼 아내는 오늘도 고군분투했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동시에 낮잠을 잔 덕분에, 소윤이가 큰 혜택을 누렸다. 시윤이와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잠이 쏟아졌지만 기를 쓰고 정신을 차려서 다시 거실로 나왔다고 했다. 다 소윤이 때문이었다. 엄마와의 시간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했을 소윤이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한 아내의 노력이었다. 아내는 소윤이와 요거트를 먹으며 소박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당연히 소윤이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고.
아내에게 저녁 외출을 제안했다. 가족 외출이 아니라 아내 홀로 나가는, 자유 부인의 시간을. 다른 날과 다르게 곧장 반응을 했다.
“응!!!!! 좋아!!!!!”
아내는 웬만해서는 먼저 자유 부인의 시간을 자청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그래도 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내가 잊지 않고 얘기를 꺼내야 한다.
“저녁은 안 해 놓고 나가도 됨”
“오키. 저녁 어떻게 하려고?”
“몰랑. 집에 먹을 거 있나? 점심에 애들 뭐 먹었어? 밥은 있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말한 것치고는 너무 이것저것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뭐 밥이야 어떻게든 먹이면 된다. 중요하지만 중요한 일이 아닌, 묘한 일이 밥 챙기는 일이다. 아내처럼 주부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마치 어떤 숙명이자 과업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미리 얘기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갑작스럽게 엄마의 외출 소식을 듣고 괜히 슬퍼지지 않도록.
퇴근했을 때, 아이들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저녁도 다 차렸다. 다행히 아내가 수고를 들여 만든 반찬은 없었다. 집에 있는 반찬거리를 쥐어 짜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단출한 식탁에 비해 아내에게서 풍기는 피로의 향기가 매우 짙었다. 준비랄 것도 없는 준비를 마치고 나갈 때마다, 아내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하아. 내 꼴이 말이 아니네”
정비와 치장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급히 나가는 아내를 볼 때마다 안쓰럽다.
“아빠. 오늘 책은 안 되져?”
“아니, 읽어줄게. 골라”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제 안다. 혼자 남은 엄마나 아빠의 육아는, 함께 할 때보다 고단하다는 걸. 엄마가 없는 시간에도 ‘너희는 얼마든지 즐겁다’는 경험이 쌓이게 하기 위해서, 아내가 없으면 더 잘 해 주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실제로 그럴 만한 체력이 되기도 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자러 들어가기 전에 서윤이에게 얘기했다.
“서윤아. 오늘은 이따가 서윤이가 자다가 깨서 나와도 서윤이 혼자 들어가서 자야 돼. 알았지? 아빠나 엄마가 같이 안 들어갈 거야. 알았지?”
“네에”
“자다가 깨서 나와도 서윤이 혼자 들어가서 자는 거다?”
“네에. 아빠아”
정확히 이해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답은 잘 했다. 요즘 자꾸 한 번씩 깨서 나오기도 했고, 특히 아내가 없이 잠든 날에는 그 시간이 더 빨랐다. 오늘도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일단 얘기나 해 봤다.
소윤이는 저녁에도 한 번 더 이야기했다.
“아빠.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니까여”
“아, 그랬어?”
“네. 시윤이가 아침에 아빠 만났다고 해서 너무 부러웠어여”
“그랬구나. 아빠는 너네 항상 보고 싶은데?”
“그래여?”
“그럼. 소윤이는 오늘 유독 왜 아빠가 보고 싶었을까?”
“글쎄. 주말에 아빠랑 너무 재밌게 놀아서?”
“아, 그런가?”
세 녀석과 함께 방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잠이 쏟아졌다. 살짝 잠들기도 했던 것 같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몽롱하게 거실로 나왔다. 잠깐 운동을 하고 소파에 앉아서 쉬는데, 역시나 오늘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는 소리 뒤에 아무 기척이 없는 걸로 봐서, 보지 않고도 서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서윤아”
“아빠”
“어. 이리 나와”
서윤이가 슬픈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일단 서윤이를 품에 안았다.
“서윤아. 깼어?”
“네에”
“그랬구나. 아빠가 조금 안아 줄 테니까 서윤이 혼자 들어가서 자. 알았지?”
“네에”
서윤이의 마지막 대답과 함께 울먹거림이 튀어나왔다. 이미 그때, ‘울면 그냥 같이 들어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서윤이는 웃음으로도, 울음으로도 무장해제를 시키는 능력이 있다. 서윤이는 순순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한 3분 뒤에 다시 방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내가 방으로 들어갔다. 서윤이는 문 앞에서 아까처럼 슬픈 표정으로 손을 빨고 있었다.
“서윤아. 왜 안 누웠어. 아빠가 좀 안아 줄게”
서윤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품에 와서 안겼다.
“서윤아. 오늘은 서윤이 혼자 다시 누워서 자는 거야. 알았지? 아빠가 아까 얘기했지?”
“네에”
눈물을 흘리지만 않았지, 목소리는 촉촉했다. 그래도 자기 스스로 자리에 가서 누웠다.
“서윤아. 잘 자”
그렇게 문을 닫고 나온 뒤로는 서윤이를 만나지 않았다. 신기했다. 혼자 들어가서 눕다니. 아내가 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눈에 보이면 괜히 더 그래”
라는 말은 겪어 봐야 온전히 이해가 가능한 표현이다. 오늘의 서윤이처럼. 덕분에 아내도 별것 아닌데 별것처럼 가지기 힘들고 그나마도 짧디짧은, 자유의 시간을 잘 누리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