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여덟 살

22.04.17(주일)

by 어깨아빠

소윤이가 어제 자기 전에 몇 번이나 말했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꼭 깨워 주세여”


소윤이가 말하는 아침은, 대략 6시 언저리였다. 어제 아내와 마주 보고 앉아서 열심히 하던 필사를 마저 하겠다는 의지였다. 새벽에 혼자라도 일어나서 하겠다는 얘기였다. 내가 깨워 주기로 하고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잤다.


소윤이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시계를 봤더니 5시 40분이었다. 두 동생도 덩달아 일어나서 따라 나갔다. 6시도 안 돼서 일어나는 세 남매라니. 오늘도 하루가 참 길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다소 다정하지 않은 말들을 주고받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고, 드문드문 방에 들어와서 아내와 내 주변을 서성거리는 서윤이가 반가웠다. 중간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러서 주의를 주기도 했고, 서윤이가 내 옆에 왔을 때는 웃으며 맞아 주기도 했다. 덕분에 5시 40분에 일어난 기분이었다. 누워 있는 건 한참 더 누워 있었지만 전혀 잠을 잔 것 같지는 않았다.


의지의 여덟 살, 소윤이는 결국 목표한 분량을 다 해냈다. 소윤이의 그 기질을 잘 다루고 발전시키면 참 유익하게 쓰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직 영글지 못한 나의 ‘아빠로서의 완성도’가 안타까울 뿐이다.


부활절이었다. 마침 우리 가족도 3주 만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너무 일찍 일어난 서윤이는 교회에 가는 길에 이미 잠들었다. 덕분에 3주 만에 드린, 부활절 예배는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소윤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저는 오늘 인라인 탈 생각만 하면 너무 기대가 돼여”


부활절인데 인라인스케이트 생각만 하면 어떻게 하냐고 웃으며 받아치긴 했지만, 소윤이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3월 초에 울산의 K 가족이 놀러 왔을 때 타고 아직 한 번도 못 탔다. 소윤이는 주말마다 인라인스케이트 얘기를 꺼냈는데, 그때마다 날씨가 안 좋거나 다른 일이 있었다. 어제 소윤이가 인라인스케이트 얘기를 꺼냈을 때, 바로 오늘 날씨를 확인하고 나서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타자”


라고 약속했다. 저녁에 형님(아내 오빠)네 아들 백일 기념 가족 모임이 있었다. 형님네 근처(이자 처가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시간에 맞춰 모임에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이동을 했다. 덕분에 아침에 나올 때 꽤 수고스러웠다. 소윤이 인라인스케이트는 물론이고 시윤이의 자전거까지 챙겨서 실어야 했다.


시윤이는 공원 가는 길에 잠들었다. 자라고 독려했다. 그래야 남은 오후 시간을 멀쩡하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시윤이도 피곤하다고 급변하는 건 이제 거의 없지만, 그래도 여파가 드러나긴 한다. 주로 귀가 막히거나 잔잔하지만 은근히 신경을 긁는 짜증을 지속적으로 발산하거나 하는 식으로.


날씨는 정말 좋았다. 소윤이는 오랜만이자 두 번째로 타는 인라인스케이트가 아직도 어색한지 시작부터 날 잡으려고 했다. 아빠를 잡으면 실력이 늘지 않으니 어떻게든 혼자 타고, 혼자 넘어지고, 혼자 일어서야 한다고 얘기하는 나의 목소리가 너무 딱딱하고 무서웠나 보다.


“여보. 목소리가 너무 무서워요”


뜨끔했다. 교육의 열정이 앞서다 보니 그랬나 보다. 그 뒤에는 최대한 다정한 말투로 얘기하기 위해 애를 썼다. 소윤이는 매우 느릿느릿 앞으로 전진했다. 마음은 쌩쌩 달리고 싶은데 따라주지 않는 몸이 답답했을 거다. 그래도 끈기를 가지고 커다란 운동장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돌았다.


그동안 시윤이는 자전거를 탔고 서윤이는 킥보드를 탔다. 둘 다 아내 곁에서 탔다. 시윤이는 혼자 잘 타니까 아내는 아무래도 서윤이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시윤이는 ‘혼자’인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이를 따라가다 보니 멀리 떨어졌지만 자주 시윤이를 확인했다. 소윤이와 한 바퀴를 돌았을 때, 장인어른도 공원으로 오셨다.


다행히 시윤이는 ‘혼자 놀아서 심심하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래 보이지도 않았다. 시윤이하고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자전거는 트랙 위에서 타는 게 금지였기 때문에 걸어서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아빠. 뛰자여”

“아빠는 힘들어서 안 돼. 그럼 시윤이만 뛰어”


시윤이는 뛰기 시작했다. 조금 뛰다 힘들어서 멈출 거라고 생각했다. 시윤이는 내 예상과 다르게 계속 멈추지 않았다. 전혀 운동할 복장이 아니었던 나는 뛸 생각은 없었고,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시윤이와 만났다. 시윤이는 여전히 뛰었다. 결국 시윤이도 운동장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뛰었다. 깜짝 놀랐다. 시윤이에게 그만한 체력과 끈기가 있다니.


‘혹시 운동에 소질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대한민국 부모적’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서윤이도 나름대로 킥보드 타는 요령을 터득해서 안 넘어지고 잘 탔다. 오빠 킥보드를 얻어 타는 주제에, 오빠가 킥보드를 탈 때마다 자기 건데 왜 타냐며 역정을 냈다.


형님네 집에 가기 전에 잠시 처가에 들렀다. 한 30분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아내는 김치를 얻어 가야 한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TV를 봤다. ‘엄마 까투리’에 나오는 ‘꽁지’와 무척 닮은 서윤이 덕분에, 엄마 까투리를 몇 편 봤다. 난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시간의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잠깐이라도 누워서 잤을 거다. 너무 졸렸다.


형님네 집에 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우리 자녀들의 백일을 세 번이나 치렀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울산에서 맞이한 소윤이의 백일은 너무나 생생히 기억이 났다. 아기 침대에 누운 소윤이를 온 가족이 내려다보는 그 장면이 유독 선명했다. 시윤이의 백일은 아주 흐릿했다. 장면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안개에 가린 풍경만 어렴풋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서윤이의 백일은 그래도 제법 최근이라 시윤이 때보다는 기억이 잘 났지만, 소윤이 때만큼 진한 기억은 아니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가족과 장모님, 장인어른이 한 식탁에 앉았고, 형님네 가족은 따로 앉았다. 형님과 형님의 처남이 번갈아 가면서 유모차를 끌고 식당 밖을 거닐었다. 뭔가 신기했다. 아이 한 명의 존재로 그 가족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된 느낌이었다.


“여보. 우리가 새삼 편해졌다는 게 느껴지네”


아내의 말처럼 그와 대비되는 우리의 상황이 굉장히 평안해 보였다. 사실 깊숙이 들어오면 꼭 그렇게 편한 것만은 아닌데 밖에서 보면 충분히 그래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때마다의, 저마다의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중, 고등학생 자녀를 둔 선배들의 고충을 들어 보면, 정말 끝이 없는 게 육아다.


카페에도 들렀다가 꽤 늦은 시간에 출발했다. 일찍 일어난 데다가 낮잠도 이른 시간에 잔 서윤이는 물론이고,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고 낮잠은 잠깐 잤으며 열심히 뛰어 논 시윤이도, 심지어 소윤이도 모두 잠들었다. 물론 소윤이는 자는 건 아니었고 버티다 살짝 조는 정도였다. 오늘도 아내가 가장 피곤해 했다. 다만, 서윤이가 이미 잠들었기 때문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엄마. 저는 서윤이가 잠든 게 안 좋아여. 그럼 엄마가 우리랑 안 들어가잖아여”


혹시 몰라 ‘그냥 우리랑 들어가서 자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아내는 ‘엄마 밤에 할 일이 많아. 설거지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치워야 하고’라며 아이들을 들여보냈다고 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명분으로 삼았던 ‘할 일’은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갈 때까지 하나도 손 대지 않았다.


“여보. 내일 애들이 물어보는 거 아니야? 왜 하나도 안 했냐고?”

“그러게. 민망하네”


오랜만에 밖에서 많이 놀았더니 애들 재우고 볼 사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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